『금궤요략』에 소개된 ‘백합병’ 증상, ‘자폐증’과 유사점 많아
두뇌〮장부〮경락 체액 부족과 관련, 백합/생지황 등 보음제 처방
한의학에서는 ‘자폐’ 또는 ‘자폐증’이란 용어가 없지만 필자는 『금궤요략』에 나오는 백합병이 어느 정도 자폐와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 백합병이 기록된 문헌
1800년 전 중국 후한 시대의 장중경 선생이 쓴 『상한론』과 『금궤요략』은 임상 한의학의 출발이 되는 책이다.
『금궤요략』에 ‘백합호혹음양독병 맥증병치(百合狐惑陰陽毒病脈證幷治)’란 제목으로 백합병을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소개된 이 병은 『금궤요략』 내용을 뽑아 인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인용문 뒷부분의 ‘도씨시호백합탕’은 『금궤요략』에 없는 처방이고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다음 내용은 허준 선생이 『금궤요략』 후반부 내용을 요약해 추가한 것이고 끝에 있는 중경이란 글자는 장중경 선생의 『상한론』 내용이라는 뜻이다.
▲ 『금궤요략』의 백합증
상한병을 앓고 나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때에 조리를 잘못해 남은 증상이 양(陽)에 있는데 의원이 도리어 설사시켰거나 남은 증상이 음(陰)에 있는데 의원이 도리어 땀을 내게 했다면 이로써 백맥(百脈)이 합병돼 경락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백합상한(百合傷寒)’이라 한다.
증상은 항상 멍하니 앉아 있고 먹고 싶으나 먹지 못하고 눕고 싶으나 눕지 못하며 걷고 싶으나 걷지 못하고 때로 밥 냄새를 맡으며 때로 추운 것 같으나 추워하지 않고 열이 있는 듯 하나 열이 없으며 입이 쓰고 소변 빛이 붉다. 또한 모든 약이 효과가 없고 약을 먹으면 토하고 설사하며 귀신이 든 것 같고 몸은 편안한 듯 하지만 맥은 미삭하다.
이것은 오줌을 눌 때마다 머리가 아픈 경우 60일이면 낫고 오줌을 눌 때 머리가 아프지 않고 으슬으슬한 경우는 40일이면 낫고 오줌을 눌 때 시원하지만 머리가 어지러운 경우는 20일이면 낫는다. 이 때는 도씨시호백합탕, 백합지모탕, 백합활석대자탕, 백합계자탕, 백합지황탕, 백합활설삭, 백합으로 씻는 법 등을 쓴다. 중경(법인 문화사 『신대역 동의보감』 p1118)
▲ 『금궤요략』 백합증의 해설
이 글에서 ‘항상 멍하니 앉아 있으며’, ‘모든 약이 효과가 없고,’ ‘귀신이 든 것 같고’의 내용을 볼 때 백합증이 현대의 자폐증과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자폐증 환자가 혼자서 공연히 중얼거리거나 히죽히죽 웃거나 이유 없이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를 내거나 방 안의 물건을 밖에 갖다 버리기도 하고 주워 오기도 하는 비상식적인 기이한 행동이나 모습과도 비슷하다.
‘모든 약이 효과가 없고’란 내용은 백합증의 증상들이 가볍게 볼 수 없고 쉽게 치료되는 증상들이 아니란 의미다. 또한 ‘모든 약이 효과가 없고’라고 했다가 뒷부분에 몇 가지 처방을 제시한 것은 언뜻 보아 모순인 것 같지만 일반적인 보통 약으로 치료가 잘 안 되는 난치에 속하는 질병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난치’란 용어는 『금궤요략(중국 인민위생출판사 간행)』에서 본문을 설명하며 ‘위역(爲逆; 잘못된 치료)’이란 본문 글자 다음에, 왕숙화의 『맥경(脈經)』에서는 본문과 동일한 문장 중에 기병난치(其病難治; 치료가 어렵다)란 글자가 들어 있다고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금궤요략』에 소개된 백합병 내용의 뒷부분은 생략하고 있다. 그 뒷부분에서는 백합병의 오치(誤治; 잘못된 치료)와 좀 더 장기적으로 치료할 경우의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백합병이 시간이 경과되면서 자연히 낫는 병이 아니고 몇 달 만에 쉽게 낫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깊은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궤요략(중국 인민위생출판사 간행, p84~100)』에는 백합병에 관한 본문 내용과 함께 역대 주석가들의 설명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p88에는 백합병이 현대적으로는 신경관능(神經管能; 자율신경 또는 뇌신경계통)의 질병에 연관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 백합병 관련 몇 가지 포인트
① 백합이란 질병은 백합꽃의 뿌리인 백합을 사용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약물은 약물 분류상 보음제이고 금궤요략의 백합병 조항에서 백합과 함께 생지황, 과루근, 계자황(계란 노른자)을 사용하는 처방을 계속 소개하고 있다. 이들도 모두 보음제 분류에 속하는 약제로, 보음제는 미네랄을 공급하는 기능이 있는 약물에 대한 한의학적 이름이다.
보음제는 스트레스를 비롯한 다양한 발열 증상으로 인해 신체 진액과 수분, 기력이 소모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신경정신적인 증상(ex. 불면, 불안, 공황장애, 이명, 번조 등)에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백합병은 두뇌를 비롯한 장부와 경락의 체액 부족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다.
② 『동의보감』 내용에서 소변과 두통에 의해 백합병의 경과를 말하는데, 이는 『상한론』 처방의 경락 원리에 따르면 두뇌 속에 유주하고 있는 방광 경락의 소통에 의해 병독이 제거되는 현상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방광 경락의 소통이 자폐증의 한방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다음 호에서 좀 더 설명하고자 한다.
③ 1800년 전인 기원 2세기에 중경 선생이 쓴 『상한론』 안에 포함된 『금궤요략』의 백합병이 오늘날 자폐증을 말하는지에 대해 현대에 와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백합병이 현대의 자폐증과 유사한 정신 신경 질환의 증상인 만큼 동일 저자의 책인 『상한론』 경락 원리에 근거해 자폐증 치료법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강주봉 원장(샬롬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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