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항암치료를 방해하는 나쁜 세포만 정밀하게 제거하는 약물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는 경희대 한의학과 배현수 교수의 목표는 ‘암을 극복하는 정밀 면역조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배 교수는 최근 종양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를 선택적으로 표적해 사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고형암에서 항암 효능을 나타내는 펩타이드 신약후보 물질을 ‘TB511’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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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511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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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경희대 한의대 배현수 교수와 응용화학과 강성호 교수 연구팀이 개발. 트윈피그바이오랩이 상용화 추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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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 원리: TB511은 종양 내에서 면역 억제를 유도하는 ‘M2형 종양 관련 대식세포(TAM)’를 선택적으로 제거, 종양 성장 억제 및 면역세포의 종양 침투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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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진행 상황: 202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2a상 시험계획 승인받음. 간암, 전립선암,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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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 TME) 내 면역세포 중 하나인 M2형 종양관련 대식세포(M2-TAM)는 종양의 성장을 돕는 대표적 면역억제 세포로, 면역반응 억제, 혈관 신생 촉진, 종양 침윤 촉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암의 진행을 유도하는 핵심 인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s, ICIs)의 치료 효과를 제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며, M2-TAM의 제거 또는 재프로그래밍은 최근 차세대 면역항암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M2-TAM을 정밀하게 타겟팅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부족하고, 기존 대식세포 억제제 및 면역조절제는 정상 면역세포까지 영향을 미쳐 부작용이나 치료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따라 M2-TAM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표적 단백질 발굴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정밀 표적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배 교수가 이번 연구를 하게끔 만들었다.
배 교수는 “면역세포 조절을 통한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중 자연계의 독성분(venom)들이 펩타이드 형태로 면역세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중 인간에서 효능이 보고된 한 물질이 동물모델에서도 강력한 항암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어 “이후 해당 물질의 특성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암세포 자체에는 직접적인 독성이 없으면서도 종양 크기를 효과적으로 줄인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되었고, 이는 면역세포에 작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면역항암제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개발한 물질의 표적이 종양 내 존재하는 M2형 종양관련대식세포(TAM)이며, 그 결합 분자가 활성화된 형태의 CD18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 TB511은 한약재나 생약 성분을 기반으로 한 약물은 아니지만, 개발 과정에서 자연계의 독성분 물질을 활용하여 M2형 대식세포를 표적으로 삼는 전략 채택. 이러한 접근은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자연 유래 성분의 활용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분자구조를 재설계하고 세포 특이적인 독성 펩타이드를 결합해 신물질 TB511을 합성했다.
그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용혈 작용과 같은 독성은 제거되고 항암 효능만을 증폭시킨 새로운 신약후보 물질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TB511의 가장 큰 차별성은 ‘정밀 종양 타겟팅’ 기능이다.
기존 면역조절 약물은 광범위하게 작용하여 정상 면역세포까지 억제할 위험이 있었던 반면 TB511은 종양 내에서만 활성화된 CD18을 표적으로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또 펩타이드 기반 물질이라는 특성은 항체 기반 약물에 비해 제조, 전달,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며 종양 침투력이 뛰어나고 신장 배출율이 높아 테라노스틱스(진단+치료) 용도로의 확장 가능성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배 교수에 따르면 이 연구의 가장 큰 난제는 TB511의 결합 타깃인 분자 구조체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먼저 대식세포에서 발현하는 수십만 개의 단백질로부터 TB511이 결합하는 단백질을 질량분석기로 선별하는 작업과 이후 선별된 수십개의 단백질을 하나 하나 유전자편집 기술로 제거하면서 결과적으로 TB511이 CD18 단백질에 결합한다는 점은 밝혀내면서 큰 고비를 넘기는 듯 했으나 또 다른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CD18은 정상 면역세포에서도 광범위하게 발현되는 단백질이라는 점에서 암 특이적인 표적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세웠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던 중 미국 박사과정 시절 연구하던 G 단백질(G protein)의 구조-기능 상관성이 떠올렸다.
CD18은 인테그린 계열 단백질로 활성화 상태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혹시 ‘활성형 CD18’이 종양 내에서 특이적으로 존재하며 TB511이 이에만 결합한다면, 종양 특이적인 반응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이에 따라 AI 기반 단백질 결합 분석, 인간 조직 샘플, 인간화 동물모델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끝에 이 가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활성형 CD18 기반의 펩타이드 치료제는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고형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병용 치료뿐만 아니라 단독 치료제로서도 개발 가능성이 크며 다양한 고형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면역억제성 M2 대식세포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췌장암,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또 고형암뿐 아니라 대식세포의 과활성이 병인의 핵심인 MASH,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등에서도 응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실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약물의 안정성과 반감기를 개선한 제형 개발, 활성형 CD18 구조를 활용한 동반진단법 확립, 펩타이드의 낮은 면역원성과 제조 효율을 유지하면서 약동학 특성 개선 및 대량생산 공정 확립이 있다.
배 교수의 목표는 이 연구가 실제 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활성형 CD18이 M2-TAM의 특이적 바이오마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확보됐기에 이를 기반으로 면역세포 리프로그래밍 전략이나 약물전달 플랫폼 확장도 함께 추진할 계획으로 TB511을 넘어, 다양한 고형암 및 자가면역 질환에 적용 가능한 정밀 면역조절 플랫폼 기술로 발전시키고 싶다”며 “이를 통해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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