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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의 나라 중국이라는 미로를 “의약(醫藥)”이라는 열쇠로 탐험하는 수작이 출간됐다. 10여 년 남짓 중국에서 연구해 온 이민호 연구원은 중국 전통 명의들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뿐만 아니라, 약왕묘와 상인, 약업경제를 둘러싼 구조를 낱낱이 밝혀낸다. 고향을 떠나 외지로 나간 약상들의 발걸음 따라 떠들썩한 시장 풍경과 일화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약신 숭배와 약왕묘

중국의 민간신앙 가운데 약왕신앙은 고대의 삼황부터 당송대까지의 역대 신의神醫들에 대한 숭배이다. 저자는 편작, 화타 등만이 아니라 무장 출신 비동과 복건·대만의 의신인 오도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약신들의 설화와 전설을 소개한다.

호랑이와 용을 치료하고 병자를 ‘기사회생’시킨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펼쳐지며, 장중경이 치료용으로 만들어 먹인 귀 모양의 교자餃子와 손사막이 창안한 도소약주屠蘇藥酒는 춘절의 풍속이 되었다. 약왕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천여 곳의 약왕묘로 확인되는데, 주로 약신들이 탄생한 곳이나 의료 활동을 벌인 지역에 건립되었다.

신앙과 약상, 약업경제의 선순환
약왕묘에서는 대략 수일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전업시장의 교역 행사이자 일종의 지역축제인 묘회廟會가 열렸다. 손사막이 도를 닦았던 섬서성 약왕산 묘회가 열리면 사묘 안에서는 약왕을 배알하였고, 부근에는 노점상들이 들어서며, 광장과 희루에서는 공연이 펼쳐졌다.

사대약도四大藥都 가운데 으뜸인 안국安國의 약왕묘회는 전국에서 모여든 약상 조직의 화합과 공동 발전을 모색하는 공간이기도 하였고, 이곳에서 섬기는 비동은 상인들의 업종 신으로도 기능했다. 이 사례들은 민간신앙으로 파생된 묘회라는 문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약업 경제가 성장했다는 저자의 지적을 적절하게 뒷받침해 준다.

약상들, 약시에서 방幇을 결성하다
명나라 중기에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 등 사회변혁과 맞물러 묘회 등도 급속히 발전함으로써 명청대 약업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저자는 약업 발달의 구체적인 예로서 우주, 장수 등 대표적인 약재 도시 6곳의 교통과 자연환경, 약재자원을 들고, 각 약시의 성장과 변천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취재한다.

또한 이들 약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13방 등 지역별 약방을 다룬다. 지연을 중시하는 중국 약상들은 각지에 동향사람들 중심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주주제와 프랜차이즈 경영의 무안방, 호號·행行·점店·장庄으로 운영한 장수방 등의 위기관리능력과 경영방식은 중국 근대상업경제나 경영사의 모식으로서도 연구될 가치가 있다.

우황청심환부터 총관도수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한의문화의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이에 이 책은 동의학東醫學, 곧 한의학韓醫學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의사와 한의학도들에게 중요한 보조자료가 된다. 또한 이 책이 조명하는 약왕신앙과 약시 및 약상조직은 중국의 전통과 근현대, 종교와 상업문화가 얽혀 있는 원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한의와 중의, 전통과 근대 상업의 교차로를 깊고도 폭넓게 파악케 하는 특별한 저작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인 이민호 박사는 경희대학교에서 중국사 전공으로 박사를 받았고 대학에서 “중국사의 이해”, “동서문화교류사” 등을 강의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에 입사한 뒤로는 동아시아 전통의학(한의학/중의학)의 역사·문화 연구에 힘쓰고 있다.

대표 저서로 《근세 중국의 국가경영과 재정》, 《동서양 문화교류와 충돌의 역사》가 있으며, 공저로는 《사회과학도를 위한 중국학 강의》, 《한중일 3국 가족의 의사소통 구조 비교》, 《한중일 기업문화를 말한다》, 《한중일 시민사회를 말한다》, 《한중일 사회에서의 소수자가족》, 《한중일 사회에서의 다문화가족》 등이 있다.

앞으로는 동아시아 전통의학과 중국의 다양한 지역 문화·역사 관련 글을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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