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 ‘오공(蜈蚣)’은 보통 ‘지네(Scolopendra subspinipes mutilans)’를 말하며, 전통 한의학에서 건조시켜 약용으로 사용해왔다. 오공은 수천 년간 통증 완화, 염증 억제, 경련 억제, 항독(해독) 등의 효과로 널리 활용돼왔다.
그런데 최근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는 이 오공의 다기능 약리 효과와 작용 기전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SCI(E)급 국제학술지 Toxins (IF 4.0)에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연구는 전통 한의학에서 활용되어 온 오공의 효능을 현대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한 것으로, 진통·항염·항균·항산화 등 다양한 생리활성을 입증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예슬 자생한방병원 원장이 책임연구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스코핑 리뷰 방식을 통해 진행됐으며, 총 123편의 관련 문헌 가운데 45편의 실험 및 임상 논문과 7편의 한의 임상 진료지침을 선별해 분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오공에서 추출한 펩타이드 SsmTX‑I는 모르핀과 유사한 수준의 진통 효과를 보였으며, 내성 및 독성은 거의 없는 안전성이 특징이다. 특히 말초신경병증 유발 동물 모델에서 이질통(allodynia) 억제 효과가 확인되었고, 고용량 클로니딘에 준하는 진정 작용도 관찰됐다.
또한, 관절염 모델에서는 관절 통증 완화, 염증 반응 억제, 파골세포 형성 억제 등의 종합적인 진통 및 항염 작용이 나타났다. 이는 기존 통증 치료에서 오공이 대체 진통제 또는 보조 치료제로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NF‑κB 경로 억제를 통한 항염 효과
오공 유래 성분의 항염 작용은 분자생물학적 기전에서도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NF‑κB 신호전달 경로를 억제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 및 COX‑2, iNOS 같은 염증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한약 처방 ‘지장산’에 포함된 오공은 면역세포 활성화 및 염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으며, 면역 균형 회복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자가면역 질환이나 만성 염증성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개입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항균·항진균 펩타이드로 감염 질환 대응 기대
오공에는 Scolopin 1, Scolopendin 2와 같은 항균 및 항진균 펩타이드가 포함되어 있어,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펩타이드는 다양한 세균 및 진균에 대해 강한 살균력을 보였으며, 감염성 질환의 한의학적 치료 기반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항산화·항혈전·신경 보호 등 다기능성
이번 연구에서는 오공이 항산화, 항혈전, 항종양, 항섬유화, 신경 보호 작용 등 다양한 생리 활성도 보유하고 있음이 함께 확인됐다. 이는 단일 효능 중심이 아닌, 복합적 약리 효과를 갖춘 전통 약재로서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다.
“과학적 한의학 입증의 계기”
이예슬 연구책임자는 “이번 연구는 오공이 전통적인 민간요법의 수준을 넘어, 현대의학적 관점에서도 충분한 효과와 안전성을 갖춘 치료 자원임을 입증한 것”이라며 “앞으로 임상 연구 및 치료 지침 반영을 통해 보다 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과 과학의 융합,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 예고
이번 자생한방병원의 발표는 전통 한약재의 과학적 근거 기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특히 모르핀 대체 진통제 개발, 항생제 내성 극복, 신경계 질환 치료제 후보 발굴 등 다방면의 응용 가능성을 갖춘 만큼, 향후 후속 연구 및 한의 임상 진료지침 개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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