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응고제·혈압약·스타틴·위고비까지⋯약 이름보다 ‘위험축’ 먼저 확인해야
한의원을 찾는 환자 중 여러 처방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약은 물론 위고비 같은 체중감량제를 사용하는 환자도 쉽게 만난다.
한약 처방 때 환자의 증상과 체질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복용하는 양약과 처방할 본초 사이 상호작용도 확인해야 한다.
▲ 상호작용 두 가지
① 약효가 겹치는 경우다. 항응고제에 혈액응고에 영향을 주는 본초가 더해지면 출혈위험이 커지고, 혈당강하제에 혈당을 낮추는 본초가 더해지면 저혈당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② 약물대사 과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사이토크롬 P450(CYP450)이나 P-당단백질(P-glycoprotein) 같은 약물대사·수송체를 활성화하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고, 억제하면 혈중 약물농도가 올라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다만 동물·시험관 연구에 머문 경우도 많아 근거 수준을 구분해야 한다.
▲ 항응고제, 출혈만 보지 않아야
와파린(warfarin), 아픽사반(apixaban), 리바록사반(rivaroxaban), 다비가트란(dabigatran) 같은 항응고제나 아스피린(aspirin),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을 복용한다면 출혈증가와 항응고 효과 감소를 모두 고려한다.
▷단삼: 대표적인 고위험 본초다. 탄시논(tanshinone)과 살비아놀산(salvianolic acid) 계열 성분이 약물대사와 혈소판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와파린 병용 후 국제정상화비율(INR) 상승과 출혈 사례도 보고됐다. 홍화·도인·삼칠근 등 활혈제 역시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다.
▷당귀: 항응고 효과가 더해질 가능성이 있다. 은행엽·생강·마늘·강황도 혈소판 기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지만 사람 대상 연구결과는 일관되지 않다.
반대 방향도 있다. 세인트존스워트(St. John’s wort)의 하이퍼포린(hyperforin)은 CYP3A4와 P-당단백질을 강하게 유도할 수 있으며 아픽사반 제품설명서도 병용을 피하도록 명시한다. 미국인삼(Panax quinquefolius)은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와파린 혈중농도와 INR을 낮췄다. 항응고 효과가 떨어져 혈전위험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다.
▲ 혈압약·이뇨제-감초·마황
리시노프릴(lisinopril), 로사르탄(losartan), 암로디핀(amlodipine) 등 혈압약 복용환자는 감초를 확인한다.
▷감초: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은 체내에서 글리시레틴산(glycyrrhetinic acid)으로 대사된 뒤 신장의 11β-HSD2 효소를 억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나트륨 저류, 칼륨 배출, 혈압상승을 일으키는 가성 알도스테론증이 나타날 수 있다.
푸로세미드(furosemide), 하이드로클로로티아지드(hydrochlorothiazide) 등 이뇨제와 장기간 병용하면 저칼륨혈증에 더욱 주의한다. 디곡신(digoxin) 복용환자는 저칼륨 상태에서 독성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마황: 에페드린(ephedrine) 계열 성분은 심박수와 혈압을 높일 수 있다.
▲ 스타틴-홍국 확인
▷홍국: 모나콜린 K(monacolin K)는 로바스타틴(lovastatin)과 화학적으로 동일하다. 아토르바스타틴·심바스타틴·로수바스타틴 등 스타틴과 함께 사용하면 작용이 겹쳐 근육통·근육손상·간 이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미국 시판 제품은 모나콜린 K 함량 차이가 커 제품별 확인도 필요하다.
▲ 위고비·오젬픽, 직접 상호작용보다 부작용 중복
인슐린이나 글리피자이드(glipizide), 글리메피라이드(glimepiride) 복용환자는 여주·인삼처럼 혈당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본초와 병용할 때 저혈당을 확인한다.
▷황련·황백: 베르베린(berberine)은 혈당과 약물수송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메트포르민(metformin)과의 직접 상호작용 자료는 동물·시험관 연구 비중이 높아 금기로 단정하기보다 혈당과 이상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적절하다.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Wegovy·Ozempic)나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 Zepbound·Mounjaro) 사용환자는 저혈당, 위장관 증상, 탈수, 위 배출 지연을 확인한다.
▷대황/번사엽: 구역·구토·설사가 심한 환자에게 강한 사하제를 추가하면 탈수와 전해질 이상이 겹칠 수 있다. 이는 확립된 직접 상호작용이라기보다 부작용 중복에 대한 주의다.
▲ 약 이름보다 ‘위험축’ 먼저
수백 가지 조합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 초진 때 처방약뿐 아니라 일반약·비타민·건강보조제까지 확인하고 고위험 약물부터 표시한다.
항응고제·항혈소판제는 출혈과 약효 감소, 혈압약·이뇨제는 혈압과 칼륨, 스타틴은 근육·간과 약효 중복, 당뇨약·GLP-1 약물은 혈당·위장관·탈수를 먼저 본다.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다고 한약 전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될 본초를 대체하거나 처방을 조정하고 관찰할 항목을 정한다. 고위험 조합인데 근거가 불분명하다면 처방 의료인이나 약사에게 확인한다.
환자에게 양약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용량을 줄이도록 안내해서도 안 된다. 약물목록 확인→고위험 약물 선별→본초 상호작용 검토→처방 조정→환자 모니터링을 습관화하는 것이 안전한 한약 처방의 출발점이다.
조남욱 기자(한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