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론』, 다양한 증(證)을 운용하는 임상기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환자 증상(症狀) 따라 주요 ‘증(證)’과 부가되는 ‘방증(旁證)’ 가려 처방
『상한론』은 동양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상 한의학의 출발점이 되는 책으로 기원 3세기에 중국의 장중경 선생이 저술했다.
임상 기법을 설명하는 이 책은 관념적인 단어가 아닌 구체적인 증상(症狀)에 대한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또한 각종 증상, 처방, 진단 등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했고 ‘증(證)’이란 특이한 개념으로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
이번 호부터 몇 회에 거쳐 다양한 병증과 처방 가운데 『상한론』과 증(證)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 ‘증(證)’에 대한 개념
서양의학에서는 외부로 드러나는 증상(症狀)을 단지 환자 진단의 참고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생화학적 검사와 MRI, CT, 초음파 진단기 등을 통한 진단으로 병인과 치료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고대에서는 인체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부족해 환자를 진단할 때엔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위주로 관찰 및 분석해 치료방법을 찾고자 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의사들 역시 증상에 근거해 병을 치료하는 기법을 모아 체계화 시켰을 것이며 이를 ‘증상 치료의 초기이론’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질병의 증상과 이에 대한 본초와 처방의 운용법 등을 경험하면서 환자의 질병과 증상, 치료약물에 대한 고대의 증상 치료의 초기이론은 더욱 깊이 있게 발전해갔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두통을 치료하는 계지를 처음 발견했다가 계지로 치료 안 되는 환자를 보게 됐고 이 환자가 소엽으로 치료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계지의 두통은 소변불리가 있는 경우에 효과가 있지만 복부에 가스가 많이 차면서 두통이 있을 때엔 계지가 아닌 소엽으로 치료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고대 의사들은 본초 즉 약물이 인체에 어떤 치료 효과가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됐을 것이고 이를 체계화시켜 증상 치료의 초기 이론은 다시 ‘증치의 초기이론’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마침내 『상한론』처럼 위대한 책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을 것이다.
『상한론』이 저술된 이후 현대까지 2000년 동안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이 책의 임상 가치가 빛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이 책의 저술 이전에 최소 2,000년 동안 쌓인 임상 체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무가 크고 높으면 뿌리가 그만큼 깊고 산이 크고 높으면 또 그만한 높이의 바탕이 산의 근저에 놓여 있어야 한다.
▲ ‘증(證)’, 왜 중요한 개념인가
어떤 하나의 본초가 환자의 여러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효능을 갖고 있을 때, 이 가운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해당 본초를 사용해야 하는 지표(指標)가 되는 장승을 그 본초의 ‘증’이라고 한다.
여기서 ‘증’은 어떤 하나의 본초가 갖고 있는 치료 가능한 증상들 가운데 한 개, 또는 몇 개의 특별한 증상을 가리키며 『상한론』에서 사용하는 본초들은 보통 한 개에서 여러 개의 ‘증’을 갖고 있다.
단일 본초가 아닌 여러 개의 본초를 결합해 만든 처방 역시 ‘증’이 있다. 한 개의 본초가 여러 개의 증을 갖고 있듯, 한 개의 처방에도 여러 개의 증이 있는데 본초의 증과 마찬가지로 『상한론』 조문에 근거해 파악하면 된다.
『상한론』에서의 증은 복진(腹診)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증을 복진으로 복진을 증으로 거의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복진이 아닌 증도 적지 않다. 또한 증은 모호하지 않고 명백한 단어로 마치 수학이나 논리학 강의 시간에 사용하는 용어처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성격을 갖는다.
『상한론』 조문 문장들은 증과 본초, 처방과 경락의 증상들을 상호간에 긴밀하게 연결상태를 설명하고 증은 이들 모든 단어와 개념을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때문에 『상한론』은 증을 운용하는 임상기법을 쓴 책이라 말할 수 있고 제대로 공부하면 증을 통해 환자의 증상과 그에 따른 생리적 병리적 상태를 간명하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파악하는 통찰력을 배울 수 있다.
▲ 본초의 증과 탕제의 증
『상한론』에 나오는 본초가 환자 증상 가운데 증(證)을 치료하는 공능이 있는 것처럼 처방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상한론』의 대표 처방인 계지탕의 경우 계지, 작약, 감초, 생강, 대조의 5개 약물로 구성되는데 계지의 증은 두통, 상충, 소변불리이고 작약의 증은 복직근 연급(腹直筋攣急)과 복통, 감초는 급박, 생강은 오심과 구역, 대조는 연급이다.
이론적으로 계지탕의 증은 구성 약물들의 증을 모두 모으면 얻을 수 있지만 『상한론』에 나오는 계지탕 관련 조문 내용에 근거해 증을 찾으면 계지의 두통, 소변불리, 상충과 작약의 복직근연급이 계지탕의 증이 되고 나머지 약물들의 증은 경우에 따라 계지탕의 증이 되기도, 안되기도 한다. 이는 체질과 병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이런 증을 ‘방증(旁證)’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신기환은 건지황, 산약, 산수유, 목단피, 복령, 택사, 계지, 부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건지황의 증은 소복구급(小腹拘急) 또는 제하불인(臍下不仁)이고 산약의 증은 연변(軟便), 산수유는 소변빈삭(小便頻數), 한출과다(汗出過多), 복령은 동계, 택사는 현훈, 계지는 두통과 소변불리, 상충(上衝), 부자는 족랭, 외한, 한출과다 등이다.
임상에서는 여러 증들을 모두 합쳐 사용하지 않고 소복구급, 제하불인, 외한, 소변빈삭, 한출과다를 팔미환의 증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증들은 체질과 병인에 따라 사용을 결정한다.
강주봉 원장(샬롬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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