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증상 및 맥진 따라 다른 약물 선택하는 ‘맥진방’
한국 한의학은 복진∙설진보다 맥진으로 약물 처방 선호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반하류 통치방에 대해 소개하고 통치방의 운용을 제대로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맥진과 약물 사용에 대해 살펴 보겠다.
▲ 반하류 통치방 처방해설
약리 실험에 의하면 에페드린이 반하에 0.02%, 마황에 1.5~2.0%가 각각 들어있다. 즉 반하에는 마황의 에페드린 성분 중 1/75~1/100이 함유된 것이다.
이 소량의 에페드린은 기관지를 확장시켜 좀 더 많은 산소량을 흡입해 심장 박동을 강화시킨다. 또한 기관지에 정체(停滯)된 담음의 흡수와 배출을 증가시키며 해수 천식과 함께 다양한 증상을 다스린다(박하후박탕, 도담탕, 소자강기탕 등). 이런 기전과 공효로 인해 반하를 ‘부드러운 마황’이라 할 수 있다.
반하는 기관지와 인후부의 담음뿐 아니라 위장관 내의 담음을 흡수 배출해 복통과 설사를 다스리고(반하사심탕, 부자갱미탕 등), 맥관(脈管) 안에 들어간 담음을 배출시켜 현훈, 공황장애 등의 증상을 다스린다(분돈탕, 온담탕, 반하백출천마탕, 분심기음 등).
반하가 들어있고 통치방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진탕과 반하후박탕을 가감해 만든 처방 예로는 온담탕, 반하백출천마탕, 분심기음, 소장강기탕, 불환금정기산, 곽향정기산, 육군자탕, 향사육군자탕, 인삼양위탕, 금수육군전, 삼소음, 대금음자, 가미이진탕, 해표이진탕, 평진탕, 지축이진탕 등이 있다.
설질이 담백하고 홍강(紅絳)하지 않고 오심, 구역감, 또는 현훈 두통이 있고 복진상 심하부와 대복(大腹) 혹은 제복(際腹)에서 장명성(腸鳴聲)이 들리면 이것은 반하를 사용하는 포인트가 된다.
반하의 증으로 현훈과 두통이 있으면 백출 택사 천마를 가해 반하백출천마탕으로, 공황장애가 있으면 지실 죽여를 가해 온담탕으로 각각 사용한다. 온담탕에서 지실을 가하는 것은 “흉복의 수적(水積)과 담(痰積)으로 인한 강한 신경증상을 지실이 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別錄, 本草經疎: 중약대사전』 中 p1238).
반하의 증으로 복잡다단한 신경증상과 함께 수족에 부종이 있으면 분심기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 경험에 의하면 본방은 만성 폐렴이나 기관지염과 연결돼 있다. 나아가 반하가 다스리는 타깃은 근본적으로 폐와 기관지에 있다고 본다.
오적산은 많은 반하 처방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기(氣), 혈(血), 담(痰), 음(飮), 식(食)의 오적(五積)을 다스린다고 하여 ‘오적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적취(積聚)는 모두 폐와 기관지에 정체된 담음으로 심폐기능이 저하돼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적산의 마황은 심폐를 강하게 반하는 부드럽게 각각 추동(推動)해 폐와 기관지에 정체(停滯)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담음을 제거함으로써 심폐 기능을 정상화 및 고양시켜서 다른 적취들까지 모두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 통치방의 운용-맥진
한의학 처방을 사용하려면 먼저 진단을 하는데 진단은 복진, 맥진, 문진, 설진 등이 있다. 증치적인 진단으로 처방하려면 복진이 우선이지만 통치방 관점에서의 처방은 복진보다는 맥진을 더 선호한다.
맥진으로 약물이나 처방을 결정하는 것을 맥진방(脈診方)이라 칭할 수 있고 백진방은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선탕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황기, 숙지황, 반하, 향부자 등 4가지 약물로 구성된 처방을 맥진방으로 설정해 놓고 사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황기, 숙지황, 반하, 향부자로 구성된 맥진방은 앞에서 말한 통치방들의 군제(君劑)를 모아서 만든 처방이다. 임상적으로는 쌍화탕에 이기제(理氣劑)와 화담제(化痰劑)가 추가된 형태로 쌍화탕 가감처방은 1960년대 녹용 전성시대 보약처방의 총수(總帥; 총사령관)였다.
맥진방에 의한 사고방식은 우리나라 8.15 해방을 전후해 여러 임상가들이 열렬히 추구했고 심지어 부자, 대황, 석고 같은 준열제(峻烈劑) 약물도 복진이 아닌 맥진으로 결정할 정도였다. 이는 우리나라 한의학이 복진과 설진보다 주로 맥진으로 처방을 결정하는 맥진 숭상(崇尙) 진단 방식에 기인한다.
▲ 맥진에 따른 약물
환자의 호소증을 듣고 맥진할 때 좌우 촌맥이 약하면 황기를, 좌우 척맥이 약하면 숙지황(건지황)을 각각 쓴다. 그리고 좌의 관맥이 현긴(絃緊; 간기울체)하면 향부자를, 완활(緩滑; 담음울체)하면 반하를 각각 사용한다.
관맥의 부위는 촌맥과 척맥의 중간이어서 수화교제(水火交際)가 나타나고 좌우 관맥은 목과 토의 관계이다.
우관(右關)의 비위맥에 간담의 맥상인 긴현(緊弦)이 어느 정도인가를 맥진으로 살펴 화담(化痰)과 함께 이기(理氣) 소설(疎泄) 소도(消導)를 하고 좌관 간담맥에 비위 맥상인 완할(緩滑)이 어느 정도 인가를 맥진으로 살펴 이기 소설과 함께 화담한다.
관맥을 임상적으로 논하면서 약물과 연결시키는 맥진기법과 이론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대략 살펴보면 비위맥에 결체가 있으면 후박, 지실, 진피, 맥아, 산사, 신곡, 사인, 백두구 등을 가한다.
또한 비위맥과 폐대장맥이 약하고 대변이 무르면서 한(寒)하면 인삼, 백출, 복령을 가한다. 비위맥과 폐맥에 완활하면 반하를, 간담맥이 현긴하고 흉복에 통증이 있으면 행부자에 청피, 직각, 삼릉, 봉출, 현호색, 천궁 등일 각각 사용한다. 간담맥과 신방광맥이 약하고 부족하면 작약, 지황을, 간담맥과 심맥이 약하면 작약과 당귀를 각각 가한다.
이와 함께 우척(右尺) 명문맥과 비위맥에 침긴(沈緊)이 있어 삼초에 한랭 증상이 있으면 건강, 육계 소회향, 부자 등을 쓰고 명문 맥이 실하고 비위맥이 부완(浮緩)하면서 면목(面目)에 열기가 있으면 지모, 황백을 더해 삼초 열기를 내린다.
심맥이 부실(浮實)하면서 설적(舌赤)과 목적(目赤)하면 황련을, 폐맥이 부실하면서 설적, 목적하면 황금을, 심맥과 폐맥이 부완하면서 면협(面頰)이 붉으면 치자를 각각 가한다.
맥진으로 약물을 연결시키는데 사용하는 맥상 용어는 약물 사용을 위한 단서를 위해 불가피하게 썼다. 맥진과 약물을 연결시키는 실질적 임상기법은 통치방, 또는 맥진방을 사용하면서 스스로 체득해야 할 과제이다.
강주봉 원장(샬롬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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