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구강 건강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치아와 잇몸의 건강은 음식을 씹고 각종 영양소를 흡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과 장수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구강 내 치아나 잇몸 등에 염증이 발생하면 전신 질환으로 확산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심뇌혈관질환과의 연관성이다.
심뇌혈관질환은 심장과 뇌 쪽으로 이어지는 중요 혈관에 문제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뇌졸중과 심근경색, 협심증, 심부전, 동맥경화 등이 대표적이다.
◆ ‘하루 3번’ 양치질만 제대로 해도 심뇌혈관질환 위험 23% ‘뚝’
경북대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 연구팀이 한국구강보건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부적절하게 구강 건강 관리를 하는 사람일수록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2010∼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건강영양조사 통합 데이터를 활용해 35세 이상 1만4천492명을 대상으로 심뇌혈관질환군(1천165명)과 심뇌혈관질환이 없는 대조군(1만3천327명)으로 나눠 평상시 구강 건강 행동이 심뇌혈관질환 발생에 미치는 연관성을 살폈다.
이 결과 지난 1년간 구강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심뇌혈관질환군이 74.3%로, 대조군(68.6%)보다 높았다.
심뇌혈관질환군은 칫솔질 실천율도 낮았다.
하루 평균 칫솔질 횟수가 ‘1회 이하’ 비율은 심뇌혈관질환군이 19.6%로, 대조군의 11.6%보다 8.0% 포인트 높았다. 반면 ‘3회 이상’ 비율은 심뇌혈관질환군이 36.7%로 대조군(46.2%)보다 낮았다.
연구팀은 칫솔질을 하루에 2회, 3회 이상 실천할 경우 심뇌혈관질환 위험이 각각 19%, 23% 낮아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치실과 치간칫솔의 사용도 심뇌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16% 낮추는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하루 3회 이상의 칫솔질이 심뇌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낮추는 연관성은 심혈관질환보다 뇌혈관질환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확연했다”며 “이는 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데 있어 칫솔질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19년 유럽심장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칫솔질의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는 뚜렷했다.
연구팀이 심혈관질환 병력이 없는 40세 이상 성인 24만7천696명을 대상으로 평균 9.5년 추적 관찰한 결과, 하루에 칫솔질을 1회 더 하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9%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1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해 스케일링 등의 치료를 받는 경우 이런 효과가 14%로 더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치주염 등의 구강질환이 C-반응성단백질(CRP)과 인터루킨-6 등을 방출함으로써 전신에 만성 염증을 일으키고, 이는 혈전이 혈관 내 혈액의 흐름을 막아 발생하는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죽상경화성 심뇌혈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구강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박테리아가 트리메틸아민-N-산화물(TMAO)과 같은 독소를 생성하는 것도 심뇌혈관질환과 연관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 당뇨병·구강질환은 서로 악영향…’폐렴·조산·노쇠’와도 연관성 커
당뇨병은 1형과 2형 모두 치주질환과의 상호 연관성이 지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잇몸에 염증이 있으면 혈당 조절이 잘 안되고, 당뇨병으로 혈당이 계속 높게 유지되면 당뇨병이 없는 사람과 비교해 치주 질환 발생이 2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다.
두 질환은 만성 염증성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뇨병의 경우 오래 앓은 환자일수록 신장, 눈, 심혈관 등 여러 조직과 기관에서 병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치주조직에도 콜라겐과 세포 합성에 손상을 끼치고, 콜라겐 분해효소를 강화해 치주 조직과 치조골의 소실로 이어지게 한다.
또한, 혈액 내 최종당화산물(AGE)의 축적으로 구강 내 염증성 반응 및 면역반응을 촉진해 치주조직 파괴를 촉진함으로써 치아를 더 빨리 잃게 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입 안의 치주 병원균은 위, 폐로도 들어가 기도의 상피세포에 감염을 일으켜 폐렴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근육, 신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삼킴 작용에도 장애가 쉽게 일어나는데, 이때 구강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해 병원성 박테리아가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이 발생할 수 있다. 치주질환자의 폐렴 발생률은 정상인의 4.2배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치주질환은 임신 여성에게 체내 호르몬 변화를 일으키고, 임신성 치은염이 치주염으로 진행될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도 보고된다.
외국의 한 연구에서는 임신부에게 치주질환이 있으면 조산아, 저체중아 출산 위험이 7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메커니즘이나 증거가 불충분하다 하더라도, 모체의 구강 건강이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불량한 구강 건강은 전신 노쇠의 시작을 미리 알리는 지표로 지목된다.
노쇠란 신체 기능이 급격히 허약해져 장애나 입원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를 말한다. 체중 감소, 근력 감소, 극도의 피로감, 보행속도 감소, 신체 활동량 감소에 이르는 5가지 지표를 측정했을 때 각각 평균치의 하위 20%에 속하는 경우가 3개 이상일 때 노쇠로 판정한다.
일본 연구팀이 65세 이상 노인 2천11명을 3년 9개월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구강 노쇠로 진단된 노인이 건강한 노인보다 전신 노쇠의 비율이 2.4배 높았으며, 이로 인한 장애율과 사망률 역시 각각 2.3배, 2.2배에 달했다.
강동경희대치과병원 치주과 강경리 교수는 “온몸 건강의 방아쇠가 구강 건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칫솔질을 ‘한 번쯤은 안 해도 크게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해 구강 건강을 소홀히 여기기 시작하면 구강에서 비롯된 염증이 입 속뿐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며 “특히 65세 이상 노인은 치아가 아프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치과에 방문해 구강 건강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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