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접종하면 면역력이 생기는 건 후천성 면역 기억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면역 기억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이전에 침입했던 병원체의 항원결정기(epitope)를 기억하는 것이다.
미래에 같은 병원체가 들어왔을 때 더 강하고 빠른 면역 반응이 유도되는 건 면역 기억 덕분이다.
보통 펩타이드 형태를 띠는 항원결정기는 항체, B세포, T세포 등이 인식하는 항원의 특정 부위를 말한다.
면역 반응의 이런 원리대로라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사람도 면역력이 생기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는 그렇지 않다.
감염됐다가 회복한 사람에게 면역력이 아예 생기지 않거나 생겨도 너무 약한 경우가 많다.
신종 코로나는 또 감염증의 위중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심하고, 어떤 사람은 특별한 증상 없어 지나간다.
다수의 신종 코로나 감염자에게 회복 후에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오스트리아 빈 의대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신종 코로나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필요한 스파이크 단백질의 특정 영역에 대한 항체 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데 원인이 있었다.
빈 의대 ‘병리생리학 감염학 면역학 센터’ 연구팀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저널 ‘알레르기(Allergy)’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저널은 ‘유럽 알레르기 임상 면역학회(EAACI)’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다.
연구팀은 1년 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가볍게 앓고 회복한 환자들로 코호트(cohort·통계적 특징을 공유하는 집단)를 구성해 개별 면역 상태를 조사했다.
그런데 상당한 비중의 피험자가 신종 코로나에 대한 중화항체를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번엔 코로나19 경증 또는 중증 회복 환자들로 더 큰 코호트를 만들어 항체 반응을 다시 분석했다.
당초엔 신종 코로나의 여러 펩타이드(항원결정기)에 대한 면역 반응이 나타날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항체는, 입체적으로 접혀 정상 구조를 갖춘 스파이크 단백질에 작용하는 것만 형성됐다.
단백질은 물리적인 유도를 통해 3차원 구조로 접혀야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가 숙주 세포와 결합하려면 입체 구조로 제대로 접힌 단백질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스파이크 단백질의 RBD(수용체 결합 도메인) 영역에 대해 높은 수위의 항체 반응이 일어나야 바이러스의 숙주 세포 결합을 막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정상 구조로 접힌 RBD(folded RBD)에 대해 항체를 형성하지 못하면 신종 코로나에 대한 면역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피험자의 약 20%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 항체를 생성하지 못했다.
이 비율은 백신 접종자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거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코로나19에 걸렸다가 나아도 충분한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연구팀은 또 백신을 접종할 때도 접힌 RBD와 결합하는 항체가 생겨야 강한 면역 방어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감염이든 백신 접종이든, 접힌 RBD에 대한 항체를 충분히 만들어내는 사람은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루돌프 팔렌타(Rudolf Valenta) 알레르기학 교수는 “(20%에 달하는) RBD 무반응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RBD 기반의 항원에 작용하는 백신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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