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허리와 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식품이자 약재로 알려진 밤이 최근 근육 노화와 비만 관련 연구를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기록된 밤의 효능을 소개하며, 최근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이 전통 한약재의 약리적 가치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최근 밝혔다.
동의보감의 율자(栗子)⋯기력 보충과 신기(腎氣) 강화
『동의보감』에서는 밤을 율자(栗子)라고 부르며,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으며 기운을 북돋우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신기(腎氣)를 보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본초강목』에도 허약해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에게 말린 밤을 먹도록 하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한의학에서 신기란 현대 의학의 신장 기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육, 생식, 노화 등 인체의 생명활동과 관련된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밤의 신기 보충 효능은 전통적으로 노화에 따른 허리와 다리의 쇠약, 전반적인 기력 저하 등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다.
밤나무꽃 추출물, 골격근 노화 억제 가능성 제시
2025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Cachexia, Sarcopenia and Muscl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밤나무꽃 추출물이 골격근의 노화를 억제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연구진은 노화된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밤나무꽃 추출물이 세포 내 손상된 물질을 제거하고 재활용하는 자가포식(Autophagy) 기능과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특히 세포의 에너지대사를 조절하는 AMPK와 EP300 관련 신호전달 경로가 관여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엘라그산(Ellagic acid)과 폴리아민(Polyamines) 등의 성분이 이러한 작용에 기여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근감소증(Sarcopenia)은 노화에 따라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면서 보행 능력 저하와 낙상 위험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질환이다. 이번 연구는 밤나무 유래 천연물이 근육 노화 관련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연구 대상은 일반적으로 먹는 밤 열매가 아닌 밤나무꽃 추출물이며, 주로 동물과 세포실험을 통해 확인된 결과이므로 인체에서의 효과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율피 추출물, 근육 내 지방 축적 감소 효과
밤의 속껍질인 율피(栗皮)도 비만 및 지방대사 개선과 관련해 연구되고 있다.
2022년 국제학술지 Phyto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율피 추출물이 근육세포의 지방산 산화(Fatty Acid Oxidation)를 촉진하고 지방 축적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됐다.
한의협에 따르면 실험에서 율피 추출물 처리군의 세포 내 지방 축적 비율은 대조군의 44.5% 수준으로 감소했으며, 지방산 산화 활성은 대조군보다 1.12배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근육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호흡 및 에너지대사 활성 증가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근육 내 과도한 지방 축적은 인슐린 저항성과 대사 기능 저하 등과 관련될 수 있어, 이번 연구는 대사질환 관련 천연물 소재 개발 측면에서도 관심을 끈다.
다만 해당 결과 역시 세포 및 동물실험 단계로, 율피 추출물의 인체 비만 치료 효과가 임상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한의학의 전통 지식, 현대 신약 개발의 단서 될까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통적으로 약용해 온 밤 열매뿐 아니라 밤나무꽃과 속껍질에서도 서로 다른 생리활성이 관찰됐다는 점이다.
한의협은 실제 밤을 한약재로 사용할 때 경우에 따라 속껍질을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밤 열매와 율피, 밤나무꽃은 성분과 약리 작용이 다를 수 있으므로 각 부위의 효능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의협은 “예부터 ‘하루에 밤 세 톨만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밤의 유익함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며, 한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주변의 천연물과 한약재를 연구한다면 새로운 의약품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통의학 문헌에서 실마리를 얻어 말라리아 치료 성분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 발견에 기여한 투유유 박사의 사례를 언급하며, 한의학 지식을 활용한 한국 고유의 신약 개발과 산업적 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전통적으로 기력과 신기를 보충하는 데 활용돼 온 밤이 현대 연구에서는 근육 노화와 지방대사 조절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향후 유효성분의 표준화와 안전성 검증, 인체 임상시험 등을 통해 실제 치료 활용 가능성이 확인될지 주목된다. (자료=대한한의사협회)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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