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최근 서로를 ‘한방사’, ‘양방사’를 부르겠다고 밝히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에서 시작한 공방이 급기야 서로를 깎아내리는 노골적인 용어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양측의 해묵은 갈등의 재연이기도 하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한의협이 △필수의료 및 1차의료에 한의사 인력을 우선 활용하고 △의대 정원 확대 필요시 한의대 정원을 축소해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주장하자 의협이 이에 대해 일축하며 대립 중이다.
먼저 한의협은 지난달 25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입장’이라는 성명 보도자료에서 “필수의료 인력부족 사태로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인 현 상황은 양의사 위주로 짜여진 편향된 의료체계가 그 근본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한의협은 “대한민국 의료는 양의사들에게 독점적 권한이 부여돼 있다”며 “그러나 양의사들은 그 권한에 걸맞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수익 창출에 유리한 피부, 미용 등 분야에 다수가 종사하며 그 결과 필수의료 인력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한의사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임상·연구 경험을 갖춘 역량있는 의료인으로서 인력이 부족한 필수의료와 1차 의료 분야에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OECD 지표상 의사 숫자에도 포함되는 한의사를 포함해서 의료인력 수급을 재정립한 뒤에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해야 한다면 현재의 한의대 정원을 축소해서 그만큼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보건의료 인력 수급에 바람직 하다”며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참여 중인 의료현안협의체에 한의협도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한의협의 이같은 주장에 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지난 1일 한방대책특별위원회 명의 성명에서 “한의협이 지속적으로 ‘양의사, 양방’ 등 개념이 없는 용어를 지속적·만성적으로 악용·남발하는 동안 우리는 ‘한방사’라는 표기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의협이 낸 성명에서 ‘양의사’라는 표현을 우선 문제 삼은 것이다.
의협 한방특위는 한의협의 주장에 대해 “현대 의료는 의학이라는 강력한 근거 중심 과학에서 비롯됐고, 의료 공급은 임상적 안전·유효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 책임을 전제해야 한다”며 “이러한 높은 책무를 ‘의사 위주’라는 왜곡으로 폄훼하는 것은 환자 안전을 방임하는 행위”하고 맞받았다.
이어 “의학적 검증·판단에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는 것은 국민 건강·의료 모두를 망치는 길”이라며 “또한 의대 정원 확대는 매우 민감한 현안이자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문제인데 단순히 한방대(한의대) 정원을 축소한 만큼 의대 정원을 늘려 보건의료 인력을 수급하겠다는 정치적 논리는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의협 한방특위는 “한방이 진정 국민 곁에서 호흡하는 길은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한방 전반에 대해 엄중하게 과학적 검증을 해서 임상적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데서 만들어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한방협 성명은 의료정책과 의료자원 현황에 대한 전문적 문제 인식과 체감이 부족한 상태로 전개된 것”이라며 “진정으로 대한민국 의료가 걱정된다면 차라리 한방대와 한방사를 폐지해 그에 소요되는 세금과 예산을 중증·응급·필수의료 분야에 환원하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의협 역시 다시 반박에 나섰다.
한의협은 지난 2일 브랜드위원회 명의 성명에서 양의사나 양방 등 용어는 “국어사전에 명기돼 있고, 법원 판결문에도 사용되는 등 비하 의미가 없는 올바른 용어”라며 “우리는 ‘양방사’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으나, 양방사협회 측이 ‘한방사’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작태를 보인다면 그에 사용하는 표현을 적극 사용하겠다”고 받아쳤다.
한의협은 “양방 한특위(의협 한방특위)는 오로지 한의사를 비하하고 한의약을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한의사는 국가에서 면허를 받아 법에 보장된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논리로 무절제한 비난을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정식 명칭까지 멋대로 폄하하는 행태는 보건의료계 전체를 욕보이는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의협은 “양방사협회 측은 경거망동을 멈추라. 진료·연구에 매진하는 한의사를 악의적으로 폄훼한다고 결코 양방사 위상이 높아지고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며 “보건의료계 전체를 어지럽히는 오만방자한 미꾸라지가 되지 말고 사태를 침묵으로 지켜보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상식적 집단으로 거듭나길 충고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는 의협과 한의협의 이번 공방은 과거부터 누적된 해묵은 갈등이 노출된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은 여러 현안 논란이 있을 때 이번과 유사한 공방을 여러차례 벌여왔다.
2013년에 한의협이 현대의료기기 사용 제한을 풀어달라고 주장하자 의협이 한의사를 의료인 범주에서 제외하고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라고 맞받았고, 이 문제는 법적 공방으로 확대하며 수년간 지속됐었다.
이외에 한방 물리요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 확대, 한약(첩약) 급여화 등 둘러싸고도 한의협과 의협은 매번 충돌한 바 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저작권자ⓒHani Times,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