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의사들은 말프랙티스(Malpractice) 클레임이 침을 잘못 놓거나 치료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치료 결과 자체보다 설명 부족, 기록 부족, 의사소통 부족이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 한의사위원회(California Acupuncture Board)가 공개한 징계 사례를 살펴보면 침 시술 자체로 인한 상해보다 허위 청구, 비전문적 행위, 기록 관리 문제 등으로 인한 제재가 훨씬 많다. 이는 임상 실력만큼이나 환자와의 의사소통과 문서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말프랙티스 클레임이 발생하면 보험사와 변호사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문서가 바로 동의서(Informed Consent)와 SOAP 노트다.
절대 주의해야 할 ‘기록 훼손(Spoliation of Records)’
클레임 발생 후 또는 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본 진료기록을 몰래 수정하거나 수정 사실을 표시하지 않은 채 내용을 변경하는 행위는 기록 훼손(Spoliation of Records)으로 간주될 수 있다.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면 기록 전체의 신뢰성이 무너질 수 있으며, 보험사의 방어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기록 위변조는 캘리포니아 한의사위원회의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추가 기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작성 날짜와 시간을 명시한 Late Entry 또는 Addendum 형태로 기록하고 원본은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의사 말프랙티스 보험사인 American Acupuncture Council(AAC)의 표준 동의서를 살펴보면 위험관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AAC 동의서는 단순히 환자의 서명을 받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향후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위험관리 매뉴얼에 가깝다.
AAC 동의서는 환자가 자신의 의료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주체임을 명시한다. 한의사는 치료의 장점과 위험성을 설명하고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향후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한 중요한 방어 근거가 된다.
또한 침, 뜸, 부항, 전침, 추나(Tuina), 한약, 영양상담 등 실제 시행 가능한 치료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침 동의서만 받아놓고 전침이나 부항을 시행했다면 분쟁 발생 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다. AAC 동의서는 멍, 저림, 어지럼증, 실신과 같은 비교적 흔한 부작용뿐 아니라 신경 손상, 장기 천공, 기흉, 감염과 같은 드물지만 중대한 합병증도 명시하고 있다. 특히 기흉은 침 치료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중증 합병증 중 하나이며, 환자가 이에 대한 설명을 사전에 들었는지 여부는 분쟁 시 중요한 쟁점이 된다.
한약에 대해서도 오심, 복통, 설사, 발진, 두통뿐 아니라 간 또는 신장 손상 가능성까지 고지하고 있으며, 임신·수유 여부와 복용 중인 약물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AC 동의서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완치를 약속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반드시 좋아진다” 또는 “완치된다”는 표현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동의서만큼 중요한 것이 SOAP 노트다. 동의서가 환자의 동의를 입증하는 문서라면 SOAP 노트는 실제 진료 과정에서 어떤 판단과 설명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좋은 SOAP 노트는 단순히 “침 치료 시행”이라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무엇을 호소했는지, 검사 결과는 어떠했는지, 어떤 진단적 판단을 했는지, 왜 해당 치료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치료 후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예를 들어 Subjective에는 통증 강도, 악화 및 완화 요인, 새로운 증상을 기록하고, Objective에는 ROM 검사, 압통점, 신경학적 검사, 스펄링 검사(Spurling Test) 등의 결과를 기록한다. Assessment에는 진단명과 치료 반응, 위험 신호(Red Flags) 여부를, Plan에는 사용 혈위, 자침 부위, 전침 여부, 치료 시간 및 향후 계획을 기록한다.
특히 환자에게 설명한 내용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멍, 저림, 어지럼증, 감염 및 기흉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였으며 환자가 이해하고 동의하였다” 또는 “발열, 체중 감소, 흉통, 배뇨장애 등 위험 신호를 부인하였다”는 기록은 향후 분쟁 발생 시 매우 중요한 방어 자료가 된다.
또한 SOAP 노트는 작성 내용뿐 아니라 작성 시점도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진료 당일 기록을 완료하는 것이다. 추후 보충이 필요한 경우에는 원본을 수정하기보다 날짜와 시간을 명시한 Addendum 형태로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동의서와 SOAP 노트는 단순한 행정서류가 아니다. 이는 환자와 한의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의료문서이며, 말프랙티스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수단이다. 침을 잘 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 의료 환경에서 좋은 설명과 좋은 기록은 좋은 치료만큼 중요한 진료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조남욱 기자(한의사∙보험 Producer-CA Lic # 449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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