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세크라멘토에서 CALE 시험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여러 언어권의 한의사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영어권, 중국어권, 한국어권에서 각각 3~4명의 한의사가 참여해 2박 3일 동안 실제 시험문제를 풀어보고 문제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때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한의사들이 방제 문제를 상당히 어려워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현재 면허를 가지고 임상 중인 영어권 한의사 가운데도 방제 문제는 거의 포기한다는 이들이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체질의학을 공부했다면 체질에 맞는 한약 처방까지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한약 처방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체질의학을 임상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약을 사용하지 않고 침 치료를 할 때 체질의학을 어떻게 응용하면 도움이 되는지 살펴본다.
침 치료에 ‘체질’이란 진단 기준 더해
체질의학은 본래 침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의학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 개인의 생리와 병리를 체질에 따라 이해한다는 점에서 맞춤의학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침 치료에서도 단순히 아픈 부위나 경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환자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한 단계 더 생각하게 해주는 진단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증이 부(腑)에 속하는 경락을 따라 나타나는 경우에는 해당 부와 관련된 경락을 이용해 비교적 빠른 통증 완화를 얻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장(臟)에 속하는 경락에 통증이 나타난 경우에는 해당 장경만 치료한다고 같은 정도의 빠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임상적으로 부의 경락에 나타난 통증은 비교적 급성 또는 국소적인 기혈순환 문제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경의 통증은 보다 오래되거나 근원적인 장부 불균형이 배경에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목 통증, 체질에 따라 원인이 다르다
한의원에서 흔히 보는 목 통증을 예로 들어보자. 필자의 임상 경험에서는 목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의 약 80~90%가 태음인과 소음인 등 음인 계열에 속했다. 소양인에게도 목 통증이 나타났지만 상대적으로 빈도가 높지 않았고, 태양인은 임상에서 접할 기회 자체가 매우 적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모든 체질의 목 통증을 설명하기보다 실제 임상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태음인과 소음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이들 환자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목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는 통증이 나타나는 경락을 찾아 치료하면 된다. 하지만 환자가 어느 부위가 정확히 아픈지 표현하지 못하거나, 통증 부위를 중심으로 치료했는데 반응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체질의학이 추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체질의학을 순환의 관점에서 보면 음인은 양기가 상부로 충분히 올라가지 못하면서 목과 어깨 부위의 순환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태음인과 소음인은 그 원인이 서로 다르다.
태음인은 간대폐소, 소음인은 신대비소
태음인은 간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항성하고 폐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간대폐소의 체질이다. 반면 소음인은 신대비소로, 폐 자체가 선천적으로 약하다기보다 비위 기능이 약해 음식으로부터 충분한 기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상부로 기운을 보내고 순환시키는 힘도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소음인은 따뜻한 날씨에는 외부의 열이 신체 순환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내부의 양기도 부족한데 외부의 도움까지 줄어들어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같은 목 통증이라도 태음인은 간의 항성과 폐의 상대적 약화를, 소음인은 비위의 허약과 기혈 생성 및 순환의 부족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태음인의 목 통증과 사암침 적용
이를 사암침에 적용해보자. 태음인의 경우 먼저 맥진이나 설진 등을 통해 간의 기운이 지나치게 항성해 폐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열이 많고 실증이 뚜렷하다면 간승격을 고려할 수 있고, 열이 매우 심한 경우에는 간한격도 생각할 수 있다. 태음인에서 나타나는 실열은 체질적으로 항성한 간의 기운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증이 주가 된다면 폐정격을 이용할 수 있으며, 습의 문제가 함께 있다고 판단되면 비정격을 더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필자의 임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태음인의 목 통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소음인의 목 통증과 사암침 적용
소음인의 목 통증은 필자의 경험상 실증보다 허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맥진, 설진, 복진 등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폐정격이나 비정격을 사용하고, 신의 기운이 지나치게 항성한 것으로 판단되면 신승격을 응용했을 때 좋은 반응을 경험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필자는 신승격을 사용할 때 용천을 중요하게 본다. 아래에 정체된 기운의 순환을 위로 유도한다는 관점으로 활용했을 때 목과 상부의 증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기존 진단으로 풀리지 않을 때 체질을 본다
체질의학의 또 다른 장점은 환자를 진단할 때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배운 기존 한의학의 장부이론을 버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기존의 방법으로 진단하고 치료했는데 반응이 충분하지 않을 때 다른 방향에서 환자를 볼 수 있는 하나의 무기를 더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한의학에서는 눈은 간, 코는 폐, 귀는 신, 입은 비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반면 체질의학에서는 이목비구와 장부의 관계를 다른 관점에서도 해석한다. 귀의 문제에서는 폐를, 눈의 문제에서는 비를, 코의 문제에서는 간을, 입의 문제에서는 신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이명을 신의 문제로 보고 치료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다면 폐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코의 문제를 폐만 치료했는데 효과가 부족하다면 간의 상태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이런 방식으로 진단의 방향을 바꾼 뒤 치료 반응이 좋아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체질의학은 ‘또 하나의 침법’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진단 기준’
결국 체질의학을 침 치료에 활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침법 하나를 더 외우는 것이 아니다.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라도 왜 그 증상이 생겼는지를 체질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기존의 경락치료에 또 하나의 진단 기준을 더하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치료가 잘되지 않을 때 다른 방향에서 환자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임상에서 체질의학을 활용하는 중요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조남욱 기자(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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