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연구는 논문을 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며, 정책과 임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3월 미국 UCI SSIH(UC Irvine Susan Samueli Integrative Health Institute) 객원연구원으로 부임한 동국대 한의대 침구과 이승덕 교수<사진>의 얘기다.
이 교수는 1999년부터 동국대 한의대에서 침구학 연구 및 교육을 했고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 객원연구원을 거쳐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동국대 한의대 LA(DULA) 총장을 역임하며 미국 한의학교육 발전에 힘써왔다.
올해 연구년을 맞아 UCI SSIH에 합류한 그는 내년 2월까지 미국 통합의학 연구진과 함께 침 치료의 임상적 활용과 의료정책 적용 방안을 분석하는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UCI SSIH는 미국을 대표하는 통합의학 연구기관 중 하나로, 현대의학과 침 치료를 비롯한 보완통합의학의 임상·연구·교육을 함께 수행하는 기관이다.
현재 그가 참여하고 있는 연구는 미국 의료기관에서 시행되는 입원환자 침 치료의 활용 현황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어떤 질환에 침 치료가 시행되는지, 누가 치료를 의뢰하는지, 환자와 의료진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등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개발하고 있다.
이승덕 교수는 “침 치료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설문을 만들어야 실제 의료현장을 반영할 수 있다”며 “질문 하나가 연구의 방향을 바꾸고, 좋은 연구는 결국 의료정책과 보험제도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 연구 환경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정책으로 이어지는 연구’를 꼽았다.
결국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 결과가 실제 의료현장에 적용되고 정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연구는 결국 환자에게 도움이 돼야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한국의 한의학을 모두 경험한 이승덕 교수는 한국 한의학의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임상 역량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은 임상 경험을 근거와 데이터로 축적해 보험과 의료정책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는 침을 정말 잘 놓는 분들이 많지만 그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후배들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은 아직 부족하다”며 “앞으로는 한국의 뛰어난 임상 경험과 미국의 근거 중심 연구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그는 동국대 재직 시절 이론 중심 수업을 줄이고 실습과 토론을 강화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도입하며 학생들의 임상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의학은 결국 술기이며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능력”이라며 “교육도 암기 중심이 아니라 임상과 술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트렌드가 된 AI에 대해서 이 교수는 AI가 논문을 찾아주고 처방을 제안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정확한 진단과 자신만의 임상 노하우는 결국 한의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AI 기반 한의 임상지원 플랫폼 ‘원 차트(One Chart)’에도 반영돼 있다. 그는 우수한 임상가들의 진단 과정과 치료 경험을 데이터화해 후배 한의사들의 교육과 임상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이승덕 교수는 “앞으로 한의사의 경쟁력은 결국 정확한 진단과 임상 노하우”라며 “AI는 훌륭한 지원도구 및 데이터 베이스가 될 수 있지만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적합한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결국 연구도, 교육도, 기술도 모두 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년 2월까지 UCI SSIH에서 연구를 이어가는 그는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하는 한편, 원 차트를 비롯한 임상지원 플랫폼 개발과 한의학교육 혁신에도 힘쓸 계획이다.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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