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옥고는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온 대표적인 보익(補益) 처방이다. 일반적으로 인삼, 생지황, 복령, 꿀 등을 주원료로 하며, 면역력 강화와 피로 회복, 호흡기 건강 개선 등에 활용돼 왔다.
그동안 경옥고는 경험적 효능에 대한 임상 활용 사례는 많았지만, COPD와 같은 만성 호흡기 질환에서 실제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대전대학교 대전한방병원 호흡기센터 박양춘 교수 연구팀이 전통 한의 처방인 ‘경옥고(Gyeongok-go)’가 COPD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폐 조직 손상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담배연기 추출물(CSE)과 세균 독소인 LPS를 이용해 COPD를 유도한 마우스 모델과 폐포 대식세포를 활용해 경옥고의 작용 기전을 정밀 분석했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은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난치성 호흡기 질환이다. 특히 흡연과 미세먼지, 대기오염 등의 영향으로 국내 환자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치료는 증상 완화와 질환 진행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새로운 치료 전략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COPD, 왜 위험한 질환인가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는 폐에 만성 염증이 반복되면서 기도가 좁아지고 폐포가 파괴되는 질환이다. 대표 증상은 만성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이며, 병이 진행될수록 폐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한번 손상된 폐 조직은 회복이 쉽지 않아 조기 관리와 질환 진행 억제가 핵심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COPD를 세계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으며, 고령화와 흡연 인구 증가로 향후 질병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COPD 치료에는 기관지 확장제와 흡입형 스테로이드 등이 사용되고 있지만, 폐 조직 자체의 손상을 근본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장기간 스테로이드 사용 시 면역 저하와 감염 위험 증가 등의 부작용 우려도 존재한다.
염증세포 증가 억제… “면역 폭주 막았다”
연구 결과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경옥고가 COPD 악화의 핵심 원인인 염증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는 점이다.
COPD가 발생하면 폐 조직 내부에는 중성구(neutrophils)와 대식세포(macrophages)가 과도하게 증가하면서 정상 폐 조직까지 손상시키게 된다.
실험 결과 경옥고를 투여한 그룹에서는 이러한 염증세포의 비정상적 증가가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특히 종양괴사인자(TNF-α), 인터루킨-17A(IL-17A) 등 강력한 염증 유도 물질의 발현 역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물질은 COPD 진행 과정에서 폐 손상과 호흡기 악화를 유발하는 대표적 염증 사이토카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경옥고가 단순히 기침이나 가래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COPD의 근본 병태생리인 만성 염증 반응 자체를 조절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폐 조직 파괴 관련 유전자도 차단
연구팀은 경옥고가 폐 조직 손상과 관련된 유전자 활성 역시 억제했다고 밝혔다.
실험에서 경옥고는 Mip2, Cox-2, Trpv1 등의 유전자 발현을 감소시켰다.
이들 유전자는 산화 스트레스와 조직 염증, 폐 손상 및 통증 반응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Cox-2는 염증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다양한 항염증 연구에서 주요 표적으로 활용된다.
연구팀은 “경옥고가 여러 염증 신호 전달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면서 폐 조직 손상을 억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직검사서 폐 손상 감소 확인
이번 연구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실제 조직학적 검사에서도 폐 보호 효과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H&E 염색과 Masson’s trichrome staining을 통해 폐 조직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경옥고 투여군은 대조군에 비해 폐포 구조 붕괴와 염증세포 침윤, 조직 섬유화가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옥고가 단순 증상 개선을 넘어 폐 조직 자체를 보호하는 ‘폐 보호제(pulmonary protective agent)’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평가다.
박양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랜 기간 호흡기 건강 증진 목적으로 사용돼 온 경옥고가 만성 난치성 호흡기 질환인 COPD 치료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임상 현장에서 COPD 환자의 폐 기능 보호와 질환 진행 억제를 위한 보조 치료 전략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전통 한의 처방을 현대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검증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기존 한방 연구가 경험적 효과나 증상 개선 중심으로 진행됐던 것과 달리, 이번 연구는 동물 모델과 세포 실험, 염증 인자 분석, 유전자 발현 평가, 조직병리학적 검사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해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를 실제 치료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연구는 COPD를 유도한 동물 모델 기반으로 진행된 만큼, 실제 환자에서의 폐 기능 개선 효과와 장기 안전성, 기존 치료제와의 병용 효과 등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보조 치료 전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고령 COPD 환자에서 반복되는 염증과 체력 저하, 면역 기능 감소 문제까지 함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의 기반 통합 호흡기 치료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약학·제약 분야 국제 학술지인 Pharmaceuticals(IF 4.6) 2026년 4월 14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되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논문 제목은 “Inhibitory Effects of Gyeongok-go on Lung Injury in a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Mouse Model”이다.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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