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의계의 입법 활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 면허 보호와 직역 수호에 집중됐던 정책 과제가 이제는 메디케어(Medicare) 공급자 인정, 공공·민간보험 보장 확대, 전문성 강화, 무면허 시술 근절 등 침술의 제도권 의료 편입을 위한 기반 마련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연방 의회와 주요 주(州) 의회에서 침술의 의료 접근성과 제도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심의되면서 미국 한의계는 “향후 10년을 좌우할 입법 국면”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연방 최대 현안 H.R.1667…메디케어 공급자 인정 추진
현재 미국 한의계가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법안은 연방 하원에 계류 중인 H.R.1667 ‘Acupuncture for Our Seniors Act of 2025’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의 Judy Chu 연방 하원의원(민주당)과 펜실베이니아의 Brian Fitzpatrick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이 초당적으로 공동 발의했다.
핵심은 면허 침구사(Licensed Acupuncturist)를 메디케어의 공식 의료서비스 공급자(Provider)로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 메디케어는 만성 요통(Chronic Low Back Pain)에 한해 침 치료 비용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작 면허 침구사는 메디케어 공급자로 인정되지 않아 직접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실제 진료는 의사(MD·DO), 간호사(NP), 의사보조사(PA) 등의 감독이나 청구 체계를 거쳐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지속돼 왔다.
법안이 통과되면 면허 침구사는 메디케어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미국 침술계가 수십 년간 추진해온 숙원사업이자, 침술이 독립적인 의료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SB944…Medi-Cal 침술 급여 보호
캘리포니아에서는 SB944 ‘Medi-Cal: Acupuncture’가 올해 가장 주목받는 침술 관련 법안 가운데 하나다.
현행법은 연방정부의 매칭 펀드가 지원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Medi-Cal에서 침술 급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SB944는 이 제한 조항을 삭제해 침술을 Medi-Cal의 독립적인 급여 항목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안의 중요성은 올해 더욱 커졌다.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가 발표한 2025년 예산 수정안(May Revise)에 Medi-Cal 침술 예산 약 540만 달러 삭감안이 포함되면서 침술 급여 축소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한 Scott Wiener 상원의원은 “반복되는 예산 삭감 시도로부터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현재 법안은 캘리포니아 상원을 통과해 하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뉴욕, 민간보험 적용 확대 추진
뉴욕주에서는 침술의 민간보험 보장 확대가 핵심 입법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논의 중인 A622(하원)와 S5955(상원)는 의사 서비스를 보장하는 대형 단체 건강보험이 의료인의 업무 범위 내 처방에 따른 침 치료를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보험사별 보장 기준이 달라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지난 4월 뉴욕주 하원은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며 침술의 보험 접근성 확대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업계는 법안이 최종 통과될 경우 뉴욕 내 민간보험의 침술 보장 범위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욕, 보수교육 의무화로 전문성 강화
침 치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뉴욕주의 S9223와 A10187 법안은 면허 갱신 시 3년마다 45시간의 보수교육(Continuing Education)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 과정에는 감염관리, Clean Needle Technique, 이상반응 대응, 의료윤리, 보험 청구, 의무기록 작성, 통합의료 협진 등이 포함된다.
현재 뉴욕은 미국에서 의무적인 보수교육 제도가 없는 몇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다.
입법자들은 보수교육 의무화가 환자 안전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신뢰를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릴랜드, 무면허 침술 처벌 대폭 강화
메릴랜드주는 올해 SB370/HB374를 통과시키며 무면허 침술에 대한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개정법은 무면허자의 침술 시술은 물론 면허자가 무면허자에게 침술을 맡기거나 방조하는 행위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위반 시 초범이라도 최대 5,000달러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하며, 무면허 침술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최대 5만 달러의 민사 벌금도 부과될 수 있다.
해당 법은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입법 흐름이 과거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면허 보호와 직역 수호가 입법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Medicare 공급자 인정, 공공보험과 민간보험 급여 확대, 교육 표준화, 환자 안전 강화 등 침술을 미국 의료체계 안으로 더욱 깊이 편입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H.R.1667이 통과될 경우 미국 침술계는 Medicare라는 연방 의료보장체계 안에서 독립적인 의료서비스 공급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각 주의 보험 확대 및 교육·면허 관련 법안이 맞물릴 경우 침술의 의료 접근성과 제도적 위상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한의계에서는 이번 연방 및 주 의회의 입법 결과가 향후 미국 침술의 보험 보장 범위와 의료시장 확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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