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관리를 위해서는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을 줄이거나 전체 식사량부터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같은 음식과 같은 양을 먹더라도 ‘무엇부터 먹느냐’에 따라 식후 혈당의 변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섭취하는 방식이 식후 혈당이 빠르게 상승하는 이른바 ‘혈당 스파이크’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학술지 ‘당뇨병·비만·대사(Diabetes, Obesity and Metabolism)’에 발표된 이화여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한국인 젊은 여성 33명을 대상으로 음식 섭취 순서와 식후 혈당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식사했을 때 식후 혈당 상승이 가장 완만했다.
같은 음식·같은 열량인데…먹는 순서만 바꿨다
이번 연구는 모든 참가자가 서로 다른 식사 방법을 경험하는 무작위 교차시험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하고 열량과 영양성분이 동일한 식사를 먹되 음식 섭취 순서만 달리했다.
한 끼 식사는 약 573㎉로 탄수화물 54.4%, 단백질 18.1%, 지방 28.0%로 구성됐다. 탄수화물 식품으로는 모닝롤과 주먹밥, 단백질 식품으로는 닭가슴살·구운 달걀·연두부, 채소로는 혼합 샐러드가 사용됐다.
식사 방식은 ▲채소→단백질→탄수화물 ▲탄수화물→단백질→채소 ▲특정 순서 없이 섭취 ▲순서와 시간제한 없이 평소처럼 섭취하는 방식으로 구분됐다.
연구팀이 건강한 젊은 여성에 주목한 것도 의미가 있다.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2형 당뇨병은 장기적인 혈관 합병증 위험과 관련될 수 있으며,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비교적 마른 체형에서도 췌장 베타세포 기능과 초기 인슐린 분비 능력의 차이로 식후 혈당 상승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채소 먼저 먹자 식후 1시간 혈당 상승 크게 감소
결과는 뚜렷했다. 탄수화물을 먼저 먹었을 때 혈당은 빠르고 가파르게 상승한 반면, 채소를 먼저 섭취하고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먹었을 때 혈당 곡선은 상대적으로 완만했다.
특히 식후 첫 1시간의 혈당 상승 정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혈당 증가 곡선하면적은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먹었을 때 ‘탄수화물→단백질→채소’ 순서보다 약 74.1% 낮았다.
이러한 차이는 식후 2시간까지 이어졌다. 채소를 먼저 섭취한 경우 특정 순서 없이 음식을 섞어 먹거나 평소처럼 자유롭게 먹었을 때보다도 혈당 상승 폭이 유의하게 작았다.
최고 혈당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채소를 먼저 먹었을 때 식후 최고 혈당은 평균 6.92mmol/L(약 125㎎/dL)이었던 반면, 탄수화물을 먼저 섭취했을 때는 8.18mmol/L(약 147㎎/dL)까지 상승했다.
최고 혈당에 도달하는 시간도 달랐다. 채소 우선 식사에서는 평균 104분이 걸렸지만 탄수화물을 먼저 먹었을 때는 약 49분이었다. 채소를 먼저 섭취했을 때 혈당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상승했다는 의미다.
하루 동안 혈당이 얼마나 크게 오르내리는지를 나타내는 평균 혈당 변동 폭 역시 채소 우선 식사에서 0.76mmol/L로, 탄수화물 우선 식사의 1.66mmol/L보다 낮았다.
‘천천히 먹기’보다 ‘무엇을 먼저 먹느냐’가 중요?
흥미로운 점은 식사 속도에 따른 유의한 혈당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 방식으로 식사한 참가자들을 식사 속도에 따라 분석했을 때 가장 빠른 그룹의 평균 식사 시간은 약 19분, 가장 느린 그룹은 약 33분으로 차이가 컸지만 혈당 관련 지표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연구팀은 식사 속도를 조절하는 것보다 음식의 섭취 순서를 바꾸는 것이 식후 혈당 상승을 관리하는 데 보다 실용적인 전략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사흘 연속 식사한 경우에도 혈당 개선 효과가 유지됐다. 식후 1시간 혈당 상승 정도는 첫날보다 둘째 날 유의하게 감소했고, 3시간 동안의 전체 혈당 상승에서도 변화가 관찰됐다.
왜 채소를 먼저 먹으면 혈당이 천천히 오를까
연구팀은 채소에 풍부한 식이섬유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식이섬유는 위장관에서 음식물의 이동과 탄수화물의 소화·흡수 속도에 영향을 줘 포도당이 혈액으로 빠르게 유입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채소를 먼저 섭취하는 것이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장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등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작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식후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의학에서도 중요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음식과 소화 기능을 건강관리의 중요한 요소로 다뤄왔다. 특히 비위(脾胃)의 기능과 개인의 소화 상태를 고려해 음식의 종류와 양, 섭취 습관을 조절하는 식양생(食養生)을 중시한다.
현대적으로 보면 혈당 관리 역시 단순히 특정 영양소를 무조건 제한하는 것만으로 접근하기보다 식사의 구성과 섭취 방법, 신체활동, 수면 등 전반적인 생활습관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식사법 역시 기존 식단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 식사 순서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건강한 젊은 한국인 여성 3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당뇨병이나 당뇨병 전단계 환자, 남성, 고령층 등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혈당강하제를 복용하거나 인슐린 치료를 받는 환자라면 식사법을 치료의 대체 수단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연구팀은 급격한 혈당 상승과 혈당 변동을 줄이는 것이 인슐린을 만들어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며, 쌀을 비롯한 탄수화물 섭취 비중이 높은 한국인의 식생활을 고려할 때 음식 섭취 순서를 조절하는 방법이 조기 혈당 관리를 위한 실용적인 비약물 전략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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