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 속이 더부룩하고 조금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부르거나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 증상이 반복돼 위내시경이나 복부 초음파 검사까지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해서 증상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내시경은 위염이나 소화성 궤양, 종양 등 위장관의 구조적·점막적 이상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검사지만, 음식물이 들어왔을 때 위가 적절히 이완되고 이를 분쇄한 뒤 십이지장으로 배출하는 과정까지 모두 평가하는 검사는 아니다.
따라서 내시경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식후 불편감이나 조기 포만감, 명치 통증 등이 반복된다면 위장관의 ‘구조’뿐 아니라 ‘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고 명치가 답답하다면
대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질환이 ‘기능성 소화불량(functional dyspepsia)’이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증상을 설명할 만한 구조적 질환이 뚜렷하지 않으면서 식후 불쾌한 포만감, 조기 포만감, 명치 부위 통증 또는 화끈거림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임상에서는 증상의 양상에 따라 크게 ‘식후불편증후군(postprandial distress syndrome, PDS)’과 ‘명치통증증후군(epigastric pain syndrome, EPS)’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식후불편증후군에서는 식사를 마친 뒤 불쾌할 정도로 배가 부르거나 평소 먹던 양을 다 먹기도 전에 포만감을 느끼는 증상이 두드러진다. 반면 명치통증증후군은 명치 부위의 통증이나 화끈거림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두 가지 양상이 한 환자에게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발병 기전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위 배출 기능이나 위 적응성 이완의 이상, 내장 과민성, 장-뇌 상호작용, 심리적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부족이나 불규칙한 식사 등도 환자에 따라 증상 악화와 연관될 수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적’, 하나의 질환명으로 봐선 안 돼
한의 임상에서는 이와 같은 만성적인 소화기 증상을 평가하면서 ‘담(痰)’이나 ‘적(積)’과 관련된 병리 개념을 적용하기도 한다. 최근 임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담적’ 역시 이러한 한의학적 병리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표현이다.
다만 담적을 위내시경이나 영상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정한 덩어리나 병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능성 소화불량과 담적을 동일한 질환으로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현대의학적 진단과 한의학적 변증은 환자의 상태를 바라보는 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적증’이라는 명칭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양상과 발생 시기, 악화·완화 요인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감별진단을 시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시경 정상’만 확인하지 말고 위험 신호부터 살펴야
진료에서는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는지, 식전과 식후 중 언제 심한지, 어느 정도 먹었을 때 포만감이 나타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명치 통증이나 속쓰림, 트림, 오심, 복부팽만, 배변 변화 등이 함께 나타나는지도 살핀다. 최근 체중 변화와 식욕, 수면, 스트레스 정도, 음주 여부, 복용 중인 약물 등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특히 특별한 이유 없는 체중 감소, 반복적인 구토, 위장관 출혈이 의심되는 증상, 빈혈, 연하곤란 등 경고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단순 기능성 질환으로 판단하기 전에 필요한 검사를 통해 다른 질환을 우선 배제해야 한다.
환자의 연령과 과거력, 가족력 등에 따라서도 추가적인 평가가 필요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여부나 위장관 기능과 관련된 검사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한의 진료에서는 ‘같은 더부룩함’도 다르게 본다
위험 질환이 배제되고 기능성 소화불량과 같은 상태가 의심되는 경우 한의 진료에서는 환자의 증상을 보다 세분화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문진과 함께 설진과 맥진을 시행하고, 복부를 직접 촉진하는 복진을 통해 압통이나 긴장, 불편감 등이 나타나는 부위를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한의학적 진찰은 내시경이나 영상검사를 대체하는 검사가 아니라 환자의 전체적인 증상 양상을 파악하고 변증 및 치료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이 ‘식후 더부룩하다’고 표현하더라도 환자마다 양상은 다르다.
식욕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하면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 환자가 있는가 하면, 과식 후 음식물이 오랫동안 위에 머무는 것처럼 답답한 환자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명치가 꽉 막히거나 트림이 증가하는 환자, 복부팽만과 무거운 느낌이 두드러지는 환자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비위허약(脾胃虛弱), 식적(食積), 기체(氣滯), 담습(痰濕) 등의 병리적 범주와 연결해 변증하고 치료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침·한약 치료도 증상과 변증에 따라 달라져
치료 역시 ‘소화불량에는 하나의 처방’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침 치료는 환자의 증상과 변증에 따라 복부와 팔다리 등의 혈자리를 조합해 시행할 수 있다. 임상에서는 중완(CV12), 족삼리(ST36), 내관(PC6) 등 소화기 증상과 관련해 활용되는 혈자리를 고려할 수 있지만, 실제 취혈은 환자의 증상과 진찰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심과 명치 답답함이 두드러지는 경우와 식후 복부팽만·조기 포만감이 주증상인 경우, 스트레스와 함께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에는 치료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한약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소화 기능이 떨어지면서 피로와 식욕 저하가 두드러지는 경우, 음식물이 정체된 듯한 불편감이 심한 경우, 복부팽만과 무거운 느낌이 동반되는 경우, 스트레스에 따라 명치 답답함이 심해지는 경우 등을 구분해 환자의 상태에 맞는 처방을 선택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담적에 좋다’고 알려진 특정 한약이나 건강식품을 증상만 보고 임의로 장기간 복용하기보다는 현재 증상과 복용 약물, 기저질환 등을 고려해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와 함께 식사·수면·스트레스 관리해야
기능성 소화불량은 증상이 좋아졌다가 다시 악화되는 양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치료뿐 아니라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다.
우선 식사 시간을 가능한 일정하게 유지하고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는 습관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야식과 폭식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식후 바로 눕는 습관을 피하고 환자에게 반복적으로 증상을 유발하는 음식이 있다면 이를 기록해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이나 술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증상을 악화시키는 음식이 있다면 섭취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많은 종류의 음식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마다 증상을 유발하는 음식이 다르고 지나친 음식 제한은 오히려 영양 섭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 역시 중요하다. 위장관은 자율신경계와 장-뇌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반복되는 환자라면 소화기 증상만 따로 떼어 보기보다 생활 패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시경 정상”은 “아무 문제 없다”는 의미 아니다
위내시경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내시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구조적·점막적 병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식후 포만감과 조기 포만감, 명치 통증이나 화끈거림이 반복된다면 기능성 소화불량을 비롯한 위장관 기능 이상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의 진료에서도 단순히 모든 만성 소화불량을 ‘담적’으로 규정하기보다 먼저 경고 증상과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살피고, 필요한 검사를 통해 구조적 질환을 배제한 뒤 환자의 소화기 증상과 식사, 배변, 수면, 스트레스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침과 한약 등 한의치료를 적용하고 식사와 생활습관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보다 임상적인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한의타임즈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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