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 어혈을 풀고 염증을 완화하는 약재로 사용돼 온 목단피(모란 뿌리껍질)가 장 건강은 물론 뇌 염증과 정신건강 개선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박기선 박사 연구팀은 목단피 추출물이 대장염으로 인한 장 염증과 조직 손상을 줄이는 것은 물론, 장-뇌축(gut-brain axis)을 통해 뇌 염증과 불안·우울 유사 행동까지 완화하는 효과를 동물 및 세포실험에서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최근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서 불안과 우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사례가 늘면서 장과 뇌를 하나의 축으로 바라보는 ‘장-뇌축’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장과 뇌는 면역·신경·호르몬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데, 장에 만성 염증이 지속되면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이는 뇌 기능과 정서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DSS로 대장염을 유도한 생쥐와 사람 유래 장 상피세포를 이용해 목단피 추출물의 효능을 분석했다. 실험에서는 실제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사용되는 메살라진(5-ASA)을 양성대조군으로 함께 사용해 효과를 비교·평가했다.
분석 결과 목단피 추출물을 투여한 생쥐에서는 대장염으로 인한 체중 감소와 대장 길이 단축이 유의하게 완화됐다.
혈액 내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TNF-α와 IL-6 수치가 감소했고, 장 조직의 손상과 세포사멸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 상피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장 점막을 보호해 장 장벽 기능 유지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 염증이 완화되면서 뇌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목단피 추출물을 투여한 생쥐에서는 불안·우울 유사 행동이 감소했으며, 고용량 투여군에서는 해마와 전전두엽에서 감소했던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수치가 회복됐다.
또한 뇌의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와 신경세포를 지지하는 성상교세포의 과도한 활성화가 억제됐고, 해마와 전전두엽에서 염증성 단백질 발현도 감소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효과의 핵심 기전으로 장 상피세포에서 일어나는 ‘네크롭토시스(necroptosis)’ 억제를 제시했다. 네크롭토시스는 세포막이 파열되면서 염증 유발 물질이 주변으로 방출되는 조절성 세포사멸 과정으로, 조직의 염증 반응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실험에서는 목단피 추출물이 활성산소(ROS) 생성을 감소시키고, RIP1-RIP3-MLKL로 이어지는 네크롭토시스 신호전달 경로를 억제해 장 상피세포 손상을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작용이 장 염증과 장 장벽 손상을 완화하고, 결과적으로 장-뇌축 기능 개선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분 분석에서는 목단피의 대표 지표성분인 패오니플로린(Paeoniflorin)과 패오놀(Paeonol)을 포함한 주요 유효성분 5종이 확인됐다. 각 성분은 활성산소 생성과 네크롭토시스 관련 신호를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으며, 연구진은 목단피의 장 보호 효과가 특정 단일 성분이 아닌 여러 유효성분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동물모델과 세포 수준에서 수행된 전임상 연구인 만큼 사람에게 동일한 치료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장 보호 효과가 혈액-뇌 장벽과 장내 미생물, 대사체 변화 등을 거쳐 뇌 염증과 행동 개선으로 이어지는 정확한 작용 경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기선 박사는 “이번 연구는 목단피 추출물이 장의 염증성 세포사멸을 억제하고 대장염에 동반되는 뇌 염증과 행동 변화까지 함께 완화할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장 투과성, 혈액-뇌 장벽, 장내 미생물과 대사체 등을 추가 분석해 장에서 뇌로 이어지는 작용 기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단피, 어디까지 연구됐나
목단피는 한의학에서 청열량혈(淸熱凉血), 활혈산어(活血散瘀) 효능이 있는 대표적인 약재로 오래전부터 염증성 질환과 혈액순환 개선 등에 활용돼 왔다.
최근에는 현대 의학 연구를 통해 다양한 약리 효과도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2023년 발표된 종합 리뷰에서는 목단피에서 패오니플로린과 패오놀을 비롯한 160여 종 이상의 생리활성 성분이 확인됐으며, 항염증과 항산화, 신경보호, 심혈관 보호, 간 보호, 면역조절, 항균·항바이러스 등의 가능성이 제시됐다.
또 2024년에는 목단피의 주요 성분인 패오놀이 궤양성 대장염 동물모델에서 염증 신호를 억제하고 장 점막 손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가 발표됐으며, 피부 염증과 아토피피부염, 건선, 상처 치유 등 다양한 피부질환 개선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도 보고됐다. 신경계 분야에서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동물모델에서 신경세포 보호와 뇌 염증 감소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연구 대부분은 동물 및 세포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한 안전성과 치료 효과 검증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는 장 염증과 뇌 염증, 행동 변화를 하나의 장-뇌축 기전으로 연결해 설명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를 한 단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한의학연구원 기본사업 ‘장-뇌축 관련 질환 개선을 위한 바이오의약소재 개발 및 기전 규명(KSN2225011)’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논문 제목은 Paeonia suffruticosa root bark extract alleviates gut-brain axis dysfunction in DSS-induced colitis via suppression of intestinal necroptosis and glial activation이며, 이강인·김민수 박사가 공동 제1저자, 박기선 박사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자료=한의학연구원)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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