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인공지능(AI)을 의료현장에서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한의사들의 관심도 필요해지고 있다.
현재 주 의회에서 심의 중인 AB 1979는 의료현장의 AI 사용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AI가 면허를 가진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professional judgment)을 대신하거나 무면허자가 AI를 이용해 면허가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문제를 규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 침구위원회(California Acupuncture Board)도 이 법안이 한의사에게 미칠 영향을 별도로 검토한 바 있다.
특히 AI가 환자와 의료인의 대화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의료차트를 작성하는 AI Scribe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번 논의는 한의사에게도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와 진료하면서 나눈 대화를 녹음하면 AI가 자동으로 전사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SOAP 노트까지 만들어 주는 AI Scribe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의사에게도 매력적인 도구다. 환자를 보면서 컴퓨터 화면에 매달릴 필요가 줄고, 진료 후 차트를 정리하는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CMS 역시 AI scribe를 실제 의료기록 작성에 사용되는 기술로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의사가 환자의 말을 녹음해 AI에게 보내고 SOAP 노트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합법일까. 보험회사나 Board가 차트를 요구하거나 소송이 발생했을 때 AI가 작성한 SOAP 노트도 의료기록으로 인정될까. 환자에게는 녹음과 AI 사용 사실을 어디까지 알려야 할까.
AB 1979를 둘러싼 최근 논의는 이런 질문이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 AI가 SOAP 노트를 작성하는 것 자체는 OK
California Acupuncture Board의 recordkeeping 규정은 한의사에게 환자별로 complete and accurate records를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키보드를 쳤느냐보다 치료내용과 환자의 경과 등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느냐는 것이다.
CMS의 지침은 이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다룬다. 의료인이 scribe를 사용할 경우 그 대상에 “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y”도 포함되며, 실제 진료를 담당한 의료인이 해당 기록에 서명해 문서와 자신이 제공하거나 지시한 care를 인증하도록 한다. 또한 CMS는 누가 또는 무엇이 내용을 전사했는지를 기록에 별도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AI가 SOAP 노트의 초안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록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AI가 작성한 내용을 한의사가 읽지 않고 그대로 저장하거나 자동서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AI가 좌우를 잘못 기록하거나 환자가 하지 않은 말을 추가하고, 실제 하지 않은 치료내용을 만들어냈다면 결국 complete and accurate record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은 한의사에게 남는다.
▲ AB 1979, ‘AI 작성’보다 ‘AI 판단’에 초점
AB 1979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안은 AI가 licensed health care professional의 professional judgment가 필요한 기능을 대신하거나, 무면허자가 AI를 통해 면허가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문제에 규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AI가 환자와의 대화를 Subjective, Objective, Assessment, Plan으로 정리하는 것과 AI에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계획까지 결정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환자가 “지난 치료 후 허리통증이 8에서 5로 줄었지만 오래 서 있으면 다시 아프다”고 말한 내용을 AI가 Subjective에 정리하는 것은 기록 보조에 가깝다. 반면 AI가 그 정보를 보고 진단, 혈자리, 치료횟수까지 사실상 결정한다면 professional judgment의 문제가 생긴다.
한의사가 기억해야 할 기준은 간단하다. “AI가 기록을 도와주는가, 아니면 내가 해야 할 임상판단을 대신하는가”이다.
▲ 문제는 AI보다 먼저 ‘녹음’에서 시작
AI Scribe를 사용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법은 AI법이 아니라 California Penal Code Section 632다. 이 조항은 confidential communication을 모든 당사자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을 제한한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자신의 증상과 병력, 개인적인 건강문제를 이야기하는 대화라면 녹음 문제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것이 “반드시 종이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Section 632 자체는 동의를 특정한 종이 양식과 서명으로 받도록 규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녹음하기 전에 환자에게 녹음 사실을 명확하게 알리고 동의를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의원에서는 최초 등록 시 녹음과 AI-assisted documentation에 관한 서면 또는 전자 동의를 받아두고, 실제 녹음하는 방문마다 짧게 다시 확인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녹음을 켜기 전에 “오늘 진료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하고 AI documentation system이 SOAP note 초안을 작성하는 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제가 최종 내용을 검토하고 승인합니다. 녹음해도 괜찮습니까?”라고 묻고 동의를 받은 뒤 녹음을 시작할 수 있다.
녹음을 시작한 뒤에는 “Just to confirm, you consent to today’s visit being recorded for AI-assisted clinical documentation, correct?”라고 다시 확인해 환자의 “Yes”를 녹음에 남겨두는 것도 동의 사실을 확인하는 실무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 안내문만 붙여놓는 것으로 끝내지 말아야
“This office uses AI” 또는 “Visits may be recorded”라는 안내문을 대기실에 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캘리포니아법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대화가 녹음된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알고 동의했는지다. 가족이나 통역자 등 다른 사람이 대화에 참여한다면 그 사람에게도 녹음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환자가 녹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AI Scribe를 끄고 기존 방식으로 차트를 작성하면 된다. 이런 선택권까지 처음부터 알려주면 환자도 AI 사용의 목적이 감시가 아니라 정확한 documentation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기 쉽다.
▲ HIPAA와 환자정보 보호, 어떤 AI를 쓰는지가 중요
환자가 녹음에 동의했다고 해서 환자정보를 아무 AI 서비스에 넣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름, 증상, 진단, 치료내용 등이 포함된 음성과 transcript는 보호가 필요한 환자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HIPAA 적용 대상 한의원의 경우 의료기관을 대신해 PHI를 생성·수신·유지·전송하는 외부 업체는 Business Associate에 해당할 수 있다. HHS는 PHI를 의료기관을 대신해 처리하거나 저장하는 서비스 제공자와의 관계에서 HIPAA 요건에 맞는 Business Associate Agreement(BAA)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용 AI 계정에 환자정보를 그대로 입력하기보다는 의료정보 처리를 전제로 설계되고 필요한 개인정보 보호 및 계약 요건을 갖춘 AI Scribe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기서 한의사가 복잡한 기술사항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해당 서비스가 의료기관의 PHI를 처리하도록 정식으로 설계돼 있는지, HIPAA 적용 대상이라면 필요한 BAA를 제공하는지, 녹음된 음성과 transcript가 어디에 저장되고 어떻게 관리되는지는 확인하는 것이 좋다.
캘리포니아에서 진료한다면 HIPAA뿐 아니라 주 의료정보보호 관련 규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AI가 작성했다는 사실을 SOAP 노트에 표시해야 하나
현재 일반적인 의료기록마다 “This note was generated by AI”라고 표시하도록 요구하는 보편적인 Medicare 규정은 없다. 오히려 CMS는 AI scribe를 사용한 경우 의료인이 기록에 서명해 인증하도록 하면서, 누가 또는 무엇이 전사했는지를 별도로 기록할 필요는 없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보험회사나 다른 기관이 SOAP note를 요구했을 때 AI가 초안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실을 별도로 표시해야 한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의사가 내용을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한 뒤 자신의 의료기록으로 인증했는가이다. 다만 특정 보험자나 기관이 별도의 documentation rule을 두고 있다면 해당 규정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환자에게는 조금 다르다. SOAP note에 AI 표시를 붙이는 문제와 환자의 대화를 녹음하기 전에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가장 투명하고 실무적인 방법은 처음부터 “대화가 녹음되고, AI가 이를 전사해 차트 초안을 만들며, 최종 기록은 한의사가 검토·승인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AI Scribe는 한의사의 차팅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규제 논의 역시 AI를 의료현장에서 배제하기보다는 보조도구로 활용하면서 최종 임상판단과 의료기록에 대한 책임은 면허자에게 남기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안전한 사용법은 단순하다. 녹음 전에 환자에게 알리고 동의를 받고, 보호되는 환자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의료용 AI 환경을 사용하고, AI가 만든 SOAP 노트를 한의사가 직접 확인하고 수정한 뒤 서명하는 것이다.
AI가 차트를 써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트를 자신의 의료기록으로 만드는 사람은 여전히 한의사다.
조남욱 기자(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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