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약재인 하수오(何首烏, Pleuropterus multiflorus)가 남성형 탈모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의학에서 보간신(補肝腎)·익정혈(益精血)의 대표 약재로 사용돼 온 하수오가 탈모를 유발하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모낭 재생을 촉진하는 다양한 신호전달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학술지 Journal of Holistic Integrative Pharmacy에 게재된 리뷰 논문은 하수오의 안드로겐성 탈모(AGA) 치료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당나라 시대부터 전해져 온 한의학 문헌과 현대 약리학 연구, 세포실험, 동물실험, 임상 관찰 연구를 검토해 하수오의 탈모 개선 기전을 정리했다.
연구에 따르면 하수오는 탈모의 핵심 원인으로 알려진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의 영향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DHT는 모낭을 점진적으로 위축시켜 모발을 가늘게 만들고 성장기를 단축시키는 호르몬이다. 논문은 하수오가 5α-환원효소와 안드로겐 수용체(AR) 관련 경로에 영향을 미쳐 모낭 손상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연구진은 하수오가 단순히 탈모 진행을 늦추는 데 그치지 않고 모발 재생 자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수오는 모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Wnt/β-catenin 신호전달계와 Sonic Hedgehog(Shh) 신호전달계를 활성화해 휴지기 상태의 모낭을 성장기(anagen)로 전환시키고, 모유두세포(dermal papilla cells)의 증식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모낭세포의 세포사멸(apoptosis)을 억제해 모낭의 생존력을 높이는 효과도 보고됐다.
논문은 VEGF(혈관내피성장인자), IGF-1(인슐린유사성장인자), HGF(간세포성장인자) 등 모발 성장에 관여하는 다양한 성장인자의 발현 증가도 하수오의 주요 기전으로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작용이 모낭 주변 미세혈관 형성을 촉진하고 두피 혈류를 개선해 모발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가 DHT 억제에, 미녹시딜이 혈류 개선에 주로 작용하는 것과 달리 하수오는 호르몬 조절, 성장신호 활성화, 모낭 보호, 혈류 개선 등 여러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는 ‘다중표적(multi-target)’ 치료 전략이라는 점도 논문에서 강조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이 하수오를 차세대 탈모 치료 후보물질로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현재 근거 대부분이 세포실험과 동물실험, 제한적인 임상 관찰에 기반하고 있으며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수오는 전통적으로 법제(炮製) 과정을 거쳐 사용되며 제조 방법에 따라 효능과 안전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수오는 드물지만 약인성 간손상과 관련된 보고가 있는 만큼 전문가의 지도 아래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제1저자인 한 비셴(Han Bixian)은 “당나라 시기부터 기록된 하수오의 효능이 현대 모발 생물학 연구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며 “이제 하수오는 단순한 민간요법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약리학적 기전을 가진 연구 대상”이라고 밝혔다.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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