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주 한의업계가 의미 있는 입법 성과를 거뒀다. 물리치료사(PT)의 업무범위 확대를 담은 AB 2497 법안에서 사실상 드라이니들링(Dry Needling)을 허용할 수 있었던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법안은 ‘드라이니들링’ 대신 ‘조직 침투(tissue penetration)’, ‘신경근 치료(neuromuscular treatment)’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한의계는 이를 침술 행위의 우회적 허용 시도로 판단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가주의 각 한의사협회 및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의사들의 증언과 서면 의견 제출, 환자와 학생들의 청원, 로비 활동이 결합되면서 결국 해당 조항은 법안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례는 조직된 한의계의 목소리가 입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번 승리가 곧 위협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약 40개 주가 이미 PT의 드라이니들링을 허용하고 있으며, 금지 상태를 유지하는 주는 캘리포니아·하와이·뉴욕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작업치료사(OT)까지 드라이니들링 권한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일부 주에서는 PT 보조사(PTA)에게까지 허용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PT를 넘어 OT, 이제는 PTA까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뚜렷한 흐름은 침습적 니들링 행위의 타 직역 확대다.
펜실베이니아 HB 1251은 지난해 12월 하원을 202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해 상원 위원회에 회부됐고, 콜로라도 HB 26-1042는 올해 2월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해 현재 상원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플로리다 HB 867 역시 작업치료사(OT)에게 드라이니들링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위원회를 통과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법안 내용보다 표결 결과다. 콜로라도 한의사들은 기흉, 혈관·신경 손상, 감염 위험 등을 이유로 반대 증언을 제출했지만 반대표는 사실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안전성 논리만으로는 더 이상 입법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의원들의 눈에 이 법안들은 직역 갈등이 아니라 의료 접근성 확대의 문제로 읽히고 있다. 실제로 논쟁의 초점도 ‘드라이니들링을 허용할 것인가’에서 ‘누구에게 허용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교육 기준의 격차 역시 적지 않다. 한의사는 수천 시간의 정규 교육과 국가시험을 거쳐 면허를 취득하지만, 플로리다 HB 867은 OT에게 면허 취득 후 2년의 임상경력과 50시간의 대면 교육만을 요구한다. 이러한 법안이 반복적으로 통과될수록 “니들링은 단기 교육으로 습득 가능한 술기”라는 인식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더 조용한 위협, 규정 개정
위협은 반드시 의회를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메릴랜드에서는 주 물리치료위원회가 드라이니들링 교육시간을 대폭 축소하고 PT 보조사(PTA)에게까지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 한의협회(MAAEM)가 반대 활동을 조직하고 있는 이유다.
입법에는 공청회와 표결이라는 공개 절차가 있다. 그러나 행정 규정 개정은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서 진행된다. 언론과 타 직역의 감시망을 비켜가지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법 개정과 다르지 않다.
특히 PTA 허용은 ‘면허 PT 본인이 직접 시술한다’는 기존의 최소 안전장치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의계가 예의주시하는 사안이다.
AB 2497이 정면 승부였다면, 규정 개정은 우회로를 통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 AB 2497이 남긴 교훈
AB 2497은 조직된 참여가 입법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동시에 미국 한의계가 앞으로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될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첫째, 논리를 바꿔야 한다. 202대 1, 만장일치와 같은 표결 결과는 안전성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교육시간 비교, 시술 부작용 데이터, 보험 및 배상 통계 등 객관적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
둘째, 감시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이제 한의계는 주의회 법안뿐 아니라 PT·OT 위원회의 규정 개정까지 주시해야 한다. 법안보다 조용하지만 더 빠르게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참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AB 2497의 결과는 한의사들의 증언과 의견서, 환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업계 단체의 조직적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미국에서 PT 드라이니들링을 허용한 주는 약 40개, 금지한 주는 3개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패배의 기록이 아니다. 앞으로 한의계가 어디에 힘을 모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좌표다.
캘리포니아가 지켜낸 것은 단순히 하나의 조항이 아니다. 미국에서 몇 남지 않은 ‘침습적 니들링은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시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AB 2497 조항 삭제는 분명한 승리였다. 그러나 전국의 입법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종전이 아니라 휴전에 가깝다. 미국 한의계의 미래는 지금도 진료실 밖 입법과 정책의 영역에서 계속 써 나가야 할 것이다.
진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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